어제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후 어느분과 이야기 하는데, 행복하냐고 물어 보시더군요.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좀 놀라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합니다. 주변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 못 봤다 하시면서요.
어쩌면 행복하지 않은게, 행복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요. 우리는 종종 어떤 걸 이루면, 어떤 걸 가지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합니다. 그게 도파민을 주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그 도파민이 보상과 연결되지만 그게 반복되면 추동력으로서 도파민만 있습니다.
행복은 얻는 게 아니라 설계하는 것입니다. 존재로서 질이 달라질 때 행복은 고이는 게 아닐까요. 찾아오게 해야지 쫒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을 설계하는 건 유위가 아니라 위무위겠군요. 행복을 어떻게 설계할까. 이와 관련된 행동경제학의 분야에서 나온 도서도 있으니 참고되시면 좋겠습니다.
쓰다보니 행복하다는 건 적절하지 않은 표현같습니다. 오히려 선선하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입니다. 행복하냐구요. 선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