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다 마사히토, 스바루 중]
'동생의 죽음 앞에서, 스바루는 하루의 일을 춤으로 표현해. 그걸로 말하는 거지. 그러나 동생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말을 무심히 하고, 동생은 미안하다며 죽어. 그게 스바루의 트라우마가 되. 그녀가 발레에 매진하는 원동력이 되는 거지.'
마음챙김은 단순히 편안한 힐링이 아니야. 자기 심리학에서 종종 의도하는 것처럼 자아의 투정을 받아주는 것도 아니지. 어설픈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물론 아니고. 어쩌면 고요한 것도 평화로운 것도 아닐 수 있어.
그건 자신이 트라우마를 겪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야. 즉 서사적이고 충동적이며 방어막으로 꽁꽁 둘러싸인 자아를 다시 겪어야 하기 때문이야. 그러나 그 겪음은 자기만 할 수 있어. 그런 점에서 자원이 되는 셈이지. 누구도 같은 인생을, 같은 색체로, 같은 생존전략으로 살아가지는 못하거든. 오로지 형성된 자아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
예전에 비록 불쾌했을지 몰라도, 적절한 생존방어 수단이었던 것들을 다시 겪어 나가는 거야. 그러나 그것들이 단지 부정해야할, 치유해야할 것들이 아니야. 그것들은 에너지야. 다시 겪어나가면서 사용되어질 에너지야. 에너지 덩어들이 여러 감정이라는 것들로 뭉쳐 있는 거야. 강력한 에너지. 그 에너지들을 잘 가열하면 이전의 감정과 다른 감정으로 사용할 수 있어. 사실 그 안에 다른 감정들이 있는데 그걸 못봤을 거야.
오래 묵은, 오랜 기간 동안 발효된 보이차를 마시면 땀이 나. 몸의 지방 속에 묻혀 있던 독들이 발산되는 거야. 그러면서 하수구 냄새가 몸에서 나기도 해. 숨어 있던 감정의 독들이 발산되는 거야. 그 독들이 발산되는 걸 겪지 않으면, 그 독을 자기 지방 속에 계속 갖고 살아가겠지.
마음챙김은, 연금술이야. 흑화가 되어서야 다시 백조가 될 수 있는 연금술. 의식의 빛으로 상처라는 원석을 가열하는 연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