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체기가 있어 견디다 못해 엄지손톱 밑을 바늘로 찔러 피를 좀 내고 집을 나섰다. 갈만한 곳이 있는가. 4년간 병석에 누워있던 남편이 떠난 것은 지난 봄이었다. 산골의 외딴집이나마 20년을 터잡고 살던 곳을 남의 손에 넘기고 아들네 옆으로 올 때는 남편을 떠나보낼 때보다 가슴이 더 쓰라렸다. 맏딸이 처음 탄 적금으로 소를 샀고 그 소를 판 돈으로 아궁이 딸린 구식 부엌을 입식 부엌으로 개조했다. 둘째 딸이 처음 탄 적금으로는 좁은 나무 툇마루를 널따란 신식 거실로, 아들의 적금으로는 지붕을 개량했다. 남편은 병석에 눕기 전에 부엌 뒤편에 고방을 달아내어 온갖 살림살이들을 쟁여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과 자식들의 피땀으로 이룩한 집은 남편이 떠난 후 단돈 500만원에 팔렸다.
독거노인들의 불쌍한 결말이 심심찮게 뉴스에 보도되던 판이어서 어느새 일흔 넘은 노모가 된 나의 거처는 아들네로 정해졌다. 그러나 아들네와 합가할 때는 아니다 싶어 아들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단촐한 아파트를 구했다. 관절이 닳아빠져 걸을 때마다 인상을 써야 하지만, 고향에 있었다면 밭 서너마지기 농사는 거뜬히 해낼 자신이 있는 체력이다. 그러므로 며늘아이에게 끼니를 얻어먹을 수는 없었다. 아직은 내 손으로 살림살이를 꾸려나갈 수 있었다.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더위가 한풀 꺾였다는데, 그보다는 가을 속으로 성큼 들어와 버린 듯 바람이 서늘하다. 엉덩이만 겨우 가릴 정도의 짧은 반바지 운동복 차림을 한 젊은 여자가 그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천변으로 간다. 집 근처에 개천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집을 나서 얼마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무릎 관절에 벌써 통증이 느껴진다. 절뚝, 절뚝, 절뚝거리는 내 걸음걸이를 뒤따르는 누구인가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개의치 않는다. 젊은 여자를 따라 천변까지 왔다. 젊은 여자는 폴짝폴짝 계단을 뛰어 내려가 노루새끼처럼 뛰기 시작한다. 저러다가 하늘로 솟아오를 수도 있겠다 싶게 가벼웁다.
계단을 기다시피 내려왔다. 둑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수크령이 밤바람에 일렁거린다. 처음으로 남편 명의의 논을 사서 흥에 겨워 한달음에 논구경을 갔을 때 농로에 어깨만큼 자라나 이삭을 빼올렸던 수크령. 수크령 길을 따라 걷고 걷고 또 걸어도 우리 논이었다. 목구멍이 뻐근하게 무엇이 치민다.
‘그 논을 두고 내가 왜 여기 있는고, 우리집을 두고 왜 여기서 헤매는고, 물에 헹군 쉰 밥과 열무김치를 같이 나눠 먹던 이웃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고. 같이 논밭을 뒹굴던 사람은 어딜 가고 나 혼자 여기서 절뚝 절뚝 걷고 있는고…….’
한 무리의 여인네들이 길을 앞질러 간다. 아직 품안을 떠나지 않은 자식과 밖의 일이나 집안 일에 모두 한창 때인 건장한 남편도 있을 마흔 무렵의 여인네들이다. 무슨 재미난 얘기라도 하는지 숨이 가쁘게 깔깔깔 웃어젖히며, 양팔을 앞뒤로 흔들며,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몰려 가는데, 여인들이 일으킨 바람 끝에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여인들이 걸어가는 쪽을 바라보는데 다리 밑에 박수 치는 이들, 두 팔을 들고 춤을 추는 이들의 가운데에 색소폰 연주자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가 뒤로 젖혔다가 하며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리 쪽으로 걸어가 본다. 한 다리가 없는 연주자가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고 색소폰을 불고 있다. 박수치는 이들 옆에 앉아본다. 연주가 끝나자 가로등이 비취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신청곡이 나왔다.
“비이……, 비내……, 리……느……은, 그……오……모려……엉.”
연주자 주위에 있던 이들이 박수를 친다. 한 다리 없는 연주자가 곧바로 연주한다. 연주에 맞추어 누군가는 노래를 부른다. 또 어디선가는 깊디깊은 한숨소리도 흘러 나온다.
어머~님의 손으을 놓~고 돌아 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구나~
먼저 간 남편이 술에 취한 날에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체한 가슴이 더욱 아리고 무릎 관절이 몹시 쑤시고 아프다. 아무래도 너무 많이 걸어온 것 같다. 저 계단을 어찌 올라 집까지 걸어 갈꼬,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데 어떤 손이 나를 자리에서 일으키고는 내 팔을 어깨 위로 올려 흔든다. 무릎 관절이 몹시 쑤시고 아픈데, 머리가 하얗게 쇤 여인이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내 손을 잡고 춤을 춘다. 나와 같이 무릎 관절이 닳고 닳았는지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치 노래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눈물을 줄줄 흘리며 춤을 춘다. ‘비내리는 고모령’을 넘어 ‘모정의 세월’을 지나 ‘봄날은 간다’가 이어지도록 춤을 춘다.
천변을 걷는 젊은 여인네들은 이 색소폰 연주가 들리지 않는가. 재빨리 다리밑을 지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들 있었다.
밤마다 안양천 산책로 한 곳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안양천 '밤의 색소폰 연주자' 아저씨와
살던 집을 떠나 먼 타지에 있는 오빠네 옆에 거처를 마련한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2009.9.11. by carrot96
제가 운영하다가 10년 가까이 방치해 두었던 N블로그를 그냥 둘러보다가
이게 뭐지? 내가 쓴 건가? 하고 가운데 부분부터 읽어 내려가는데
도저히 제가 쓴 글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출처를 확인하려고 맨 아랫 부분을 살펴보니
제가 쓴 글이 확실하네요. ㅎㅎㅎ
닥.1.1. 프로젝트를 실천하려고 노트북을 열었으나
오늘(벌써 어제군요) 오후 내내
다음학기 강의 시연을 하느라
심신히 피곤하여
도저히 글이 써지지를 않는 관계로
N블로그의 글을 복사해다 붙여 놓았습니다.
제가 쓴 글인데, 문제 될 건 없겠지요....ㅎㅎㅎ
저희 엄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 단편도 아니고.....
엽편 소설입니다...............
우리 엄마 권여사님의 삶에
존경과 사랑을 표하며....
읽어 주시는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