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눈이 많이도 내려서 쌓였네요.
제가 40년 남짓 살았는데요, 지금까지 경험에 의하면
눈은 특히 야간작업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는 사이 소복하게 내려앉아놓고는
아침에 "Surprise!!"하면서 하얀 이벤트를 하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힛)
1일 1글쓰기를 하려 했는데,
어제 하루는 이웃 분들 포스팅에 댓글 달고
보팅하는 것으로 스티밋 활동을 대신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과 새로 맞팔하는 사이가 되었고요,
신데렐라 그 후 2편 보상이 드디어 자연수가 되었습니다.
이전 글에도 자연수가 있긴 하지만,
이벤트 당첨으로 받은 보상이어서 뭔가....
큰언니가 다 해준 방학숙제로 상을 받은 기분이었달까....
암튼 기분이 참 좋네요...
요런 맛에 스티밋을 하는가보다...싶습니다.
신데렐라 그후 3편은 조금 더 정리를 한 후에 올리기로 하고요,
오늘은 기억 속의 그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불러내 봅니다.
왜 나는 안 불렀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요..(하하하)
하나. MJ
여중 여고 동창.
읍내 꽃집 딸이었는데, 꽃다발에 쓰는
이~쁘고 가녀린 꽃 말고
호박꽃 같은 친구였음.
공부를 잘 했고,
성품이 원만해서 이런 저런 친구들과 모두 둥글둥글 잘 지냈음.
만화책을 특히 좋아해서
쉬는 시간 복도를 걸으면서 만화책을 보았음.
여고 1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MJ네 집에 놀러 감.
역시 월간 만화책이 책장 가득 가지런히 꽂혀 있었음.
우리집은 몹시 가난한데다가 또 몹시 근엄해서
만화책 따위는 집안에 들일 수 없었음. 아예
만화책은 존재하지 않는 장르였음.
그런 만화책 따위가 MJ네 집 책장엔
몹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이
매우매우 놀라웠음.
간식으로 친구들 네 명이 라면 여섯 봉 또는 여덟 봉
또는 열 여덟봉(암튼 많이)을 끓여 먹고는 만화책을 보았음.
MJ는 그 당시 인기만화를 모두 줄줄 꿰고 있었음
친구들에게 그 친구가 재밌어 할 것 같은 만화를 권하기도 하고
줄거리를 얘기해 주기도 하면서 정말 너무 행복해 했음.
그러다가 멋진, 정말 멋진, 정말 멋진, 정말 잘 생긴,
최고 잘 생긴, 정말 우주에서 최강 멋지고 잘 생긴 사람이 있다며
어느 만화책의 한 페이지를 펼치더니
그 우주에서 최강 멋지고 잘 생긴 만화 주인공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봐..... 이 남자 머릿결 너무 좋지.................!!"
--미모의 이학박사 MJ, 잘 지내냐?
너는 참 재미있고 똑똑하고 착한 친구였어.
연락은 끊어졌지만, 어디서든 너의 역할을 잘 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행운을 빈다, 친구야.
둘. 할매
할머니를 우리 동네에선 할매라고 불렀음. 그래서
나도 할머니를 할매라고 불렀음.
지금도 우리 할머니는 할매라고 부름(마음으로).
우리 할매는 허리가 굽었었음.
원래 부잣집 고명딸로 귀하게 컸으나
몹시도 가진 것 없는 할배와 결혼해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허리가 굽으셨음.
할매 할배가 연애라고 한 삼년 하고 결혼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음. 그 당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는
집안 어른들끼리 결혼할 당사자도 모르게 정혼해 버리고
시집을 보냈음. 증말, 이 한가지만 봐도 그때 안 태어난 것이
복이라면 아주 큰 복이라고 생각함.
허리가 굽은 채로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하지만
할매는 부지런히 집안을 돌며
온갖 잡일을 억세게 다 하셨음. 엄마랑 아부진
농사일 하시느라 집안일 할 힘도 시간도 없었음.
그 지팡이가 문제였음.
집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려면 지팡이가 꼭 있어야 하는데,
집안으로 들어갈 때 어디다 놓았는지 몰라서
매번 나를 불러 지팡이를 갖다달라고 했음.
엄마 기억으론, 할매가 그렇게 시킬 때마다
나는 암말도 없이 빨딱 일어나 지팡이를 대령했다고 하지만....
내 기억으론 아니었음.
그날도 몇 번이나 지팡이 심부름을 했던 나는
어린 마음에 심통이 났던 모양...
또 할매가 지팡이를 갖다 달라고 시키자
빽!! 소리를 지르며,
쪼매난 몸에 가득가득 짜증을 담아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하며,
발을 통통 구르며 지팡이를 던지듯 할매한테 주었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러운 한 마디 말.
"나도 너 같은 때가 있었다!"
그때의 할매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함.
나이를 먹을 수록 가슴을 아프게 하는 말임.
--할매, 그땐 내가 철이 없었어. 많이 미안해...
거기서 아부지랑 잘 지내는 거지? 할배랑 싸우지 말고 있어.
보고싶다, 우리 할매....
셋. 또 아부지
'그 사람들' 전편에서도 언급했지만
국민핵교(나때는 국민핵교였음) 다닐 땐
2킬로미터(전편에선 4키로라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2키로 정도 되는 것 같음) 정도 거리를 매일 걸어다녔음.
겨울방학이 대충 2월 초에 끝나고 2월 20일 경 봄방학을 하는데,
이때 등교길은 정말 욕나오게 춥고춥고 추웠음.
특히, 발이 너무너무 시렸음.
시골집은 신발을 집안에서 벗는 구조가 아님.
그래서 당연히, 마당 한 쪽 개밥그릇의 개밥이랑, 물이랑, 눈 녹은 물, 세숫대야에 담긴 물 등등 하여간 얼 수 있는 것들은 다 어는데 신발도 같이 얼었음.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아침에 세수를 해야 하는 것도
아침에 옷을 갈아 입는 것도
아침에 머리를 빗어야 하는 것도
아침에...
아침에....
아침에................하여간
추운 겨울 아침에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은 너무너무 싫은데
특히 꽁꽁 언 신발을 신고 2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가장 싫고 힘들었음.
그날 아침도 그렇게 추웠고 신발도 꽁꽁 얼어 있었음.
아부지가 새벽 군불을 떼고 잔불을 아궁이 안쪽으로 쓱쓱 밀더니
내 신발을 휙 가져가셔서는 아궁이 안에다 넣는 것임.
나는 아부지를 몹시도 무서워했는데
아부지가 내 신발을 아궁이 불에 쳐넣는 줄 알고
왜 그러냐고 신발을 뺏으려고 했음.
아부지는 '가만 있어 봐' 하시며
내 신발을 아궁이 안에 넣으심.
옷을 갈아입고, 학교 갈 준비를 다 하고 밖으로 나오니
아부지가 신발을 아궁이에서 꺼내 내 앞에 놓아 주심.
신발은 아궁이 온기에 말랑말랑하고 따뜻해짐.
그렇게 그 날 아침,
따뜻하게 데워 진 말랑한 신발을 신고 학교를 걸어갔음.
이상하게 하나도 춥지 않았음.
학교에 다 갈 때까지 발이 따뜻했음.
이건, 아부지와 나만 아는 일임.(헤헤)
넷. 또 또 아부지
아부지는 파킨슨 병으로 서서히 몸이 굳어갔음.
내가 결혼 날짜를 받아 놓고 결혼 준비를 할 무렵
아부지는 딱딱한 육신에 의식이 갖혀
의사표현을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할 수 없었음.
웨딩촬영을 하기 위해
남편이 휴가를 내고 나를 데리러 왔음.
남편이 온김에 아부지 입원하신 병원으로 아부지를 뵈러 감.
가도 아부지랑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갔음.
아부진 전전전날, 전전날, 전날과 똑같이 누워 계셨음.
할 말도 없었음.
결혼할 남자를 데려 왔는데,
아부지도 나도 할말이 없었음.
그래서, 괜히 아부지를 졸라 봄.
"아부지, 막내딸 시집 가요. 장롱 사게 돈 좀 줘요."
역시 아무 반응이 없..................아니고
아부지 눈에 뭔가 젖은 것이 차오르는 것임.
그리곤 주르륵 눈꼬리로 흐름.
나도 목까지 뭐가 차 오르는데, 애써 누르고 웃음.
아부지 눈가를 닦아 주고, 병실을 나왔음.
바보.
조금 더 옆에 앉아 있다 나올 것이지!
--아부지!
엄마랑 언니들이랑 오빠가 도와 줘서 장롱이랑 냉장고랑 살림살이 몇 가지 샀어요.
그리고 재미나게 재미나게 잘 살고 있어요..
아부지 생각을 하니 울컥하네요.
아부진 제가 결혼한 해 추석 지나고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보름 전 신기한 일이 있었는데, 그건 아껴뒀다가 나중에 풀어 놓을게요.
그리고 우리 할매...
사실 우리 할매는 저의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이 이야기도 나중에 풀어 놓기로 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새겨진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글로 쓰고, 하고 싶었던 말을 해 보니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드네요.
이런 기분 참 좋아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기분으로 지금을 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
사랑이 넘치는 스티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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