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입니다. 문득, 오늘 새 글을 쓰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라 잠 못들고 뒤척이다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바로 글이 술술 나올만큼 숙성된 글감이 없어서, 예전에 쓴 글을 하나 공유하려고 합니다.
2년 전 쯤..회의감으로 가득 찬 채로 회사를 다니던 어느 밤 쓴 글인데요. 지금 보니.. 그때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더 심각했는데, 마음껏 글쓰며 살 여건이 조성된 지금 왜 이리 게을러 졌는지 반성을 하게 되네요. 그래도...한편으론 어쨌든 글을 쓰며 살겠다는 생각을 놓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저.. 뭐라도 쓰고 싶은데 망설여 지는 분들, 글쓰기가 힘들어 놓고 싶은 분들이 보시면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뭐라도 쓰시면 되는 거니까요, 여러분 :)

어릴 때는 무엇이든 끼적이는 걸 좋아했다. 심한 악필이라 내 글씨를 보는 게 맘에 들진 않았지만, 획과 획이 만나 글자가 되고,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어 그 행간 조차 의미를 머금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려다, 방송판에 들어가 말을 쓰게 되었다. 내가 쓰지만 나의 것이 아닌 말. 남이 하기 좋고 듣기에도 좋은 말. 중학교 2학년도 이해할 줄 알아야 하는 보편적인 말. 말을 쓰는 작업은 흥미로웠지만 갈증이 났다.
5년 후 그 바닥을 떠나 전혀 다른 일을 업으로 삼게 되면서 갈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온라인 가십거리, 좋아요를 갈구하다 내일이면 사라질 활자들. 휘발하는 글자를 기술적으로 나열하는 게 익숙해져 버린 나는 결국 언젠가부터 진짜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갈증도 잊어버렸다.
아주 단순한 끼적거림도 하지 않았다.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마음속에 꾸역꾸역 눌러 담아 놓기만 할 뿐, 내뱉는 일은 흔치 않았다. 사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둔 언어가 어느 날 봇물 터지듯 넘쳐서 흘러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세월은 그 '흘러 넘침'을 거들 것이라 믿었다. 내 안에서 푹 익은, '완숙한' 언어를 이끌어내리라고.
그것은 완벽한 착각이었다. 언어는 깊숙이 사라져 떠오르지 않았다. 쓰려고 앉으면 나의 마름을 확인할 뿐이었다. 두려워졌고, 무서워졌다.
얼마 전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쓴다는 말이 우습다. 사실 예전에 써둔 낙서를 옮기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옮기면서도 두려웠다. 영영 써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 한두 개는 그저 옮기는데 급급했는데, 서너 번째 작성한 글부터는 조사나 어순을 바꿀 욕심이 생겼다. 대여섯 번째 글부터는 문장을 조금씩 없애고 추가할 수 있었다. 아홉, 열 번째는 새로 쓰거나 꽤나 많이 덧붙여 썼다. 그리고 오늘은 손이 가는 대로, 그냥 막 되는대로 써대고 있다.
며칠 전 좋아하는 회사 선배와 술을 마셨다. 그는 나에게 평생 회사에 있을 것처럼 일하지 말라고 했다. 회사 일만 하지 말고, 내가 잘 하는 것을 더 잘 해서, 어디든 그 바닥에서 수명이 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요즘 조금씩 다시 글을 쓰고 있다고. 자정 넘어 퇴근하는 날에도 되도록이면 조금이라도 쓰고 자려고 한다고.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노력하고 있다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행이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는 책을 읽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하루에 한 장이라도 책을 읽는 게 어느새 의식처럼 되어버렸다고. 오늘처럼 술이 떡이 된 날에도 집에 들어가서 자기 전에 한 장 읽으면, 자기는 오랫동안 유지해온 그 의식을 지킨 게 되는 거라고.
그러니 너도 오늘 들어가서 기역의 'ㄱ'이라도 쓰고 자라고. 그러면 너의 글을 쓰고자 하는 그 뜻, 명맥이 유지되는 거라고.
그래서 오늘도 뭐라도 쓰고 있다. 물론 술이 떡이 되진 않았다. 야근 때문에 조금 고단할 뿐. 이 활자는 택시 안의 정적을 채우기 위함이다.
또박또박 입력되는 폰트가 내 필체보다 예쁜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이리 기분이 좋아도 이상할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