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이벤트, 제 1회 PEN클럽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작성하는 포스트입니다.
벼락치기 일기숙제
스티밋을 일기장으로 쓰고 있다. 나 혼자 쓰고 덮어놓는 일기장이 아니기에 가끔 MSG를 좀 쳐서 과장하기도 하고, 영구박제가 된다기에 주변인이나 지역 등 특정정보는 조금 수정하기도 한다. 천하제일 일기쓰기 대회가 열렸기에 언제부턴가 계속 일기를 쓰려고 마음먹었으나 내가 하는 일이 늘상 그렇듯, 해야할 일을 앞두고는 그 일 외에 모든일이 재미있다. 그래서 우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유튜브 채널에서 음악도 듣고 UFO, 관상, 대마도 여행에 대한 검색도 했다. 아이와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는다. 시계를 보고 가슴이 철렁한다. 이게 뭐라고. 마감시간이 코 앞이라 아이를 재우려고 긴급조치에 들어간다.
아이가 잠들질 않는다. 그림자놀이가 끝나도 덥다는 핑계로 자꾸 짜증을 부릴 뿐, 잠에 들질 않는다. 네가 잠들어야 내가 글짓기 숙제를 한단 말이다. 눈을 감고 무슨 내용을 쓸지 생각만 해 본다. 수많은 주제들이 머릿속을 떠다니지만 1,500자를 쓸 깜은 아니다. 그래서 어릴 때 방학숙제를 쉽게 하게 하던 필살기인 존댓말로 쓰기나 이중부정으로 서술하기, 대명사 안 쓰기, 심형래 말투 활용하기 등의 기술을 미리 연습한다. 종합하여 시전하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는 그러나, 잠이 들 수도 없고 잠이 들지 않을 수도 없는 그런 급한 상황에서 잘까, 말까, 아니 차라리 잠을 자지도 말고 안 자지도 말고 그냥 깨있을까 등의 잡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지는 않았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나저나 아이가 잠들질 않는다. 갑자기 로비 윌리암스의 뮤직비디오, supreme에 등장하였던 똥 누다가 화장실에 갖혀 경기에 참가하지 못한 F1레이싱 우승후보처럼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드디어 아이가 잠이 들었다. 컴퓨터 방에 가니 컴퓨터가 켜져있다. 마우스를 휘적휘적 하며 모니터를 깨워보니 집사람이 아까 작업하던 내용이 그대로 펼쳐져있다. 아까전에 회사일로 뭔가를 작성한다더니 창을 20여개나 열어놨다. 평소에 저장하지 않고 작업하는 성격을 알기에 나중에 잔소리하려고 일부러 그대로 놔두고 다시 거실로 나온다. 안그래도 오늘 낮에 작성하던 내용을 모두 날렸다기에 ‘보나마나 저장도 안하고 그대로 메일 첨부파일 열어서 작업하고 있었겠지뭐’라고 답하니 고개를 끄덕였던 게 생각난다. 예전에도 시지프스처럼 같은 작업을 두어번씩 했던 걸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시지프스나 다이달로스는 뭐 쓸만한거라도 훔쳐왔지, 그녀는 뭘 챙겨왔길래 저런 끊임없는 벌을 받을까. 아, 내 마음? 되도 안한 생각을 한 대가로 내 스스로 뺨을 치며 주방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웹툰을 보며 키득거리다가 시계를 본다. 아차, 숙제.
윗 문단을 살짝 손 본 뒤에 분량을 확인했더니 공백 포함 1415자다. 흐흐.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면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찾는다. 노트북에는 한번도 연결해본적이 없기에 설정에 들어가서 2분가량을 헤매다가 성공한 뒤 유튜브로 노래를 튼다. 등려군-월량대표아적심, 임현정-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동물원-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가 목록의 앞부분에 보인다. 모델명이 LG-PH3인 이 스피커는 결혼하고 혼수로 가전을 장만하고 생긴 자투리 포인트를 이용하여, 아이가 태어난 뒤에 산 것이다. 아마 결혼식을 준비와 관련지을 수 있는 물건 중엔 마지막에 구매한 물건이 아닐까 싶다.
쓸데없는 짓인 걸 알면서도, 수시로 물건에 의미를 부여한다. 노트북은 집사람과 연애하면서 첫 해외직구로, 노트북 옆의 미니 선풍기는 아이가 ‘비행기’를 발음할 수 있게 된 이후에 아이를 데리고 나간 첫 해외여행에서, 그 옆의 식탁매트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온 후 첫번째로 ‘새 집’분위기를 내고 싶다며 산 것이다. 이미 헌 것들이 되어버린 새 것들 사이에서, 오늘은 낡은 하루가 새로운 한 주를 기다리며 시계의 분침을 바라보고 있다. 분침이 12에 도착했을 때, 낡은 옷을 던지고선 새 옷을 걸친 채 날더러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지’물을 것이다.
공백 포함 약 1950자의 (다 읽어보면 아무 내용없음에 황당할) 일기를 마칩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김작가님과 kr-pen 태그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