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님의 PEN클럽 공모전 응모를 위한 일기입니다. 일기라 반말투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9박 10일 동안 유럽 여행을 가시며 어머니께서 아버지 혼자 계시니 잘 챙겨 달라 말씀하셨다. 여행 가시기전에 어머니가 아버지 드시라고 곰국을 끓여 놓으셨다지만 아버지 혼자 잘 챙겨드실지 걱정이 됐다.
아니. 왜?
저녁에 아버지랑 오랫만에 명동에서 식사 할까하고요.
어. 그래 알았다.
늘 그렇듯 아버지와의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하고 끊었다.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아버지랑 명동에서 저녁식사 하려는데..
어쩌지..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바빠..
동생을 탓할 순 없다. 오늘 마침 시간이 나서 갑자기 일을 추진한건 나니까.. 그나저나 아버지와 단 둘이 뭐하나..
오랫만의 명동이다. 명동은 언제나처럼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버지. 식사 어디로 가실까요?
오랫만에 M돈가스 가보고 싶어.
M돈가스.. 어릴때 가끔 가족 모두가 외식 가던 곳. 그 집 돈가스를 우리 가족 모두 참 좋아했다.
여기 히레가스 두 개요.
그렇게 나온 히레가스는 내 기억보다 작았다. 어릴때 먹던 이 집 돈가스는 분명 크고 두꺼운 고기로 만들었던거 같은데..
이 집 돈가스 좀 작아졌네.
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신거 같다.
아버지. 요즘 식사 잘하고 계세요?
곰탕 끓여먹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아내가 곰국을 끓이면 긴장하게 된다는 우스갯 말만 들었지 우리 아버지 얘기가 될지 몰랐다.
아버지 요즘 몸은 어떠세요?
밥을 먹으며 지속되는 침묵이 어색해 건조한 질문을 해본다.
나이드니 온 몸이 아퍼. 예전에 어르신들이 나이들면 온 몸이 아프다더니 그 말이 맞어.
네.
칠순이 넘으신 아버지지만 젊어보이셔서 가끔 아버지 나이를 잊는다.
용인쪽에 납골당이 있다는데.. 거기 좀 주말에 가서 알아봐라. 괴산쪽은 좀 멀어서 가기 싫구나.
아버지는 베트남참전을 하신 분이라 돌아가시면 괴산에 있는 국립묘지에 뭍히신다는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그리고 나 없더라도 동생하고 서로 돕고 살고 손주 놈들 끼리도 친하게 지내게 해.
네.
돈가스를 다 먹었다. 내 기억의 돈가스가 아니다.
고기 크기가 예전보다 작고 이젠 너무 평범한 돈가스 맛.
잘먹었다. 오랫만에 먹으니 맛있네. 가자.
아버지라도 맛있게 드셔서 다행이다.
집에 가려고 을지로 입구역 계단을 내려간다.
한걸음 한걸음 조금 힘겹게 내려가시는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도 흘러가는 세월을 이길 수 없으시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땐 호랑이같은 아버지라 세상 그 누구한테도 질거 같지 않은 분이였는데..
손주놈 과자 사줘라.
몇 만원을 쥐어주신다. 내 나이에 아버지께 용돈을 받다니.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아버지를 집에 보내드리고 귀가한다.
귀가길에 어릴적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들과 함께 명동에 왔던게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명동 바닥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아버지는 그걸 보여주시겠다며 어린 나를 목마 태워주셨다.
아버지 목위에서 본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은 그야말로 화려한 불빛과 인파로 가득차 있었다.
그날도 아마 돈가스를 먹었지.
이제는 그저 평범해져버린 돈가스 맛이 떠올랐다.
돈가스가 어릴적 그 맛이면 좋았을걸.
내가 입맛이 까다로워진걸까 돈가스가 변한걸까?
아버지 잘들어가셨어요?
귀가하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어 그래. 오늘 돈가스 맛있게 잘먹었다. 잘자라.
네. 아버지. 저도 돈가스 맛있게 먹었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오늘은 왠지 쉽게 잠이 올거 같지 않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