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을 경험해서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모르는 남자와, 어느 것도 아는 것이 없어 어떤 것을 채워야 할지 모르는 여자. 두 남녀의 너무도 많은, 너무도 적은 결핍이 서로의 꿈속에서 만났다, 앞으로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숲속의 사슴이 되어서.
먹을 것을 채워주고 싼 것을 치워주는 울타리에 갇힌 소들은 알까, 저들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먹을 것을 찾아가고 싼 것이 어디에 있을지 모를 야생의 사슴들은 알까, 저들의 운명은 자신들도 모른다는 것을.
두 남녀는 이미 그 끝이 정해져 있는 소들이 가득한 도축장에서 만났고, 만남의 끝이 어딘지 모를 숲속의 사슴이 되어 꿈속에서 다시 만났다. 핏빛이 낭자한 도축장에서 소들의 인위적인 사정과 수정을 연결해주는 교미가루가 없어지며 사건은 전개된다. 예사 물건이 아니기에 경찰까지 출동하게 되고, 경찰은 넌지시 재무이사인 남자 주인공에게 회사 내 사람들의 정신감정을 추천한다.
누가 범인이냐는 이 영화에서도, 남녀 주인공 둘에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교미가루를 누가 훔쳐가서 많은 이들이 보기에 타협되지 않을 방법으로 썼는가보다, 정신과 의사에게 받은 꿈의 감정과 내용의 가루들이 삼자대면을 통해 서로 확인하고 어떻게 뭉쳐지는가가 두 남녀에게는 중요하다. 처음부터 그러했던 건 아니었지만.
꿈속의 사랑이 어떻게 뭉쳐지는가는 서로가 알지 못한다. 남자는 많이 굴려봤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양이 어떠한지 모르고, 여자는 전혀 굴려보지 못했기에 이미 남들이 굴려 놓은 모양, 이를테면 사랑에 대한 음악과 심지어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다룬 포르노까지 접하게 된다.
이미 가공되어진 고기를 파는 회사의 재무이사를 맡고 있는 남자는 그 일상이 반복되어 무덤덤하다. 이 일을 한번도 접해보지 않아 교본에 짜여진 그대로 고기의 등급을 매기는 여자는 그 등급의 오차 범위가 날카롭고 좁다.
서로 같은 꿈을 꾸며 뜻하지 않게 사건에 대한 감정을 맡은 정신과 의사에게 꿈의 내용을 말하지만, 같은 내용을 두고도 서로가 표현하는 어휘와 표현들이 달라 꿈속에서는 만나지만 현실에서는 헤매인다.
육체적인 결핍을 가진 남자와 정서적인 결핍을 가진 여자. 도축장에서의 만남은 그 운명을 순응한다는 듯이 일상을 흘려보내지만, 겨울 숲속의 사슴이 되어 꿈속에서 만났을 때는 그 운명을 개척한다. 계속해서 움직이며 물을 찾고 땅 속 깊이 숨겨진 먹이를 찾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 할 테니까.
영화의 끝은 육체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정신적인 충족을 서로가 얻는 것으로 끝나는 듯 하다. 그 후로 전에 볼 수 없던 표정들을 볼 수 있다. 이제는 꿈속의 사슴이 되어 만나지도 않는다. 현실만이 남았다.
영화는 해피앤딩으로 끝이 난 것 같지만, 둘의 관계가 계속 행복한 상태를 지속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채워주고 치워주는 것에 순응한 도축장의 소들로 돌아갈 것인가, 결핍이 무엇인지 알고 찾아내는 숲속의 사슴이 될 것인가. 사랑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