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날 폭도로 몰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폭도가 아님을 증명하는 과정이 누군가에 의해 그들이 폭도라는 증거가 되어간다. 몰렸다는 것은 이미 모는 쪽의 힘이 강하다는 뜻.
오늘 해고를 당한 사람들이 있다. 해고를 당하지 않을만한 근거를 문서든 법이든 관계든 실력이든 뭐로 가지고 있었어도 피고용인은 고용인에게 해고를 당한다.
#2
기득권층은 무엇을 이미 얻었길래 기득권일까? 그들에게 세상은 절대로 잃지 않고 항상 따기만 하는 도박판이다. 프레임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광역시의 선량한 시민 전체를 하루 아침에 폭도로 만들고, 마트 직원 전체를 오늘 실업자로 만들어도 프레임만 잘 짜면 그들은 연루되지 않는다.
당사자들에 대한 적절한 회유나 무서운 협박, 겁에 질리게 만들 수 있는 폭력, 잘 길들여진 몇 개의 언론사와 입신을 원하는 실무자, 양명만이 지상 목표인 정치인까지 모두 모아 언제나 영화 한 편쯤은 가뿐히 찍을 수 있다면 진짜 기득권이다. 본인은 2가지만 알면 된다. 원하는 것과 챙겨야 할 사람. 어차피 그림도 옆에 붙은 수완가가 그린다. 법이나 도덕, 정의의 아우성은 이미 소리가 없다.
#3
그것에 희생 당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이후 살아남은 모든 여성이 우연한 생존자임을 외치듯, 우리 모두 우연하게 기득권층의 직접적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 5.18 사건을 다룬 영화를 보며 저것은 38년 전 일이라며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거나 나는 마트의 계약직 직원보다 훨씬 사회적 입지가 탄탄하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정확하게 희생 당하기가 좋은 캐릭터호구이다. 당연히 나도 저항할 수 없는 약한 존재이다.
#4
그럼 실제 싸움판에는 등장도 안 하는 악의 최종보스와도 같은 그들이 짜는 판에서 희생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아는 유일한 답은 '남에게 관심을 좀 가지고 살기' 이다. 더 그늘지고 더 차갑고 더 소외된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처지에, 아니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만이라도 하고 살아야 한다.
챙겨보기 힘든 시간에 한다는 단점만 빼면, 그런 의미에서 인간 극장은 최고의 TV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사람이고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다른 곳에도 이것들이 똑같이 있다. 우리 이야기'만' 행복하게 만들수록 어딘가의 이야기는 조금씩 슬퍼진다.
#5
프레임을 짜고 하수인을 내세워 악을 행하는 최종보스는 시대의 흐름만이 심판할 수 있다. 우리는 개인이나 소수의 힘으로 결코 심판자가 될 수 없으며
개인은 '끝판인 줄 알고 마지막 기력을 짜내어 클리어 하지만 기쁨도 잠시, 히든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화면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하는 슈퍼마리오 같은 존재'일 뿐이다.
생명 하나로는 리얼 마지막 스테이지까지가 너무나 험난하다. 그러니까 혼자 힘으로 처벌이나 복수, 심판에 초점을 맞추지 말자. 불가능한 계획이다. 대신, 우리 곁에 조금 힘든 이들과의 상생과 화합으로 컨셉을 바꿔보자. 모두가 웃을 때 같이 웃는 게 더 행복하지 아니한가? 불역열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