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the writer
_00. 만 3년 만의 귀국. 한국 생활 3주 차다.
_01. 미세 먼지 짱난다. 파이프 얘기할 때 언급했나 모르겠는데 나는 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몸 안에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처지랄까. 미세 먼지 마신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를 폐를 자극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는데 그 갑갑함에 먼저 질식할 거 같다.
_02.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많진 않았다. 그래도 평양냉면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필 정상회담에서 언급되는 바람에… 아무리 맛집이라도 줄 서서 먹진 않는데 굳이 전철 타고 다른 동네까지 갔던 터라 그냥 돌아올 순 없었다. 맛은 있었다. 만두가 동나는 바람에 못 먹은 건 아쉬웠지만.
_03. 한국 방송은 여전했다. 여전히 음식 관련 컨텐츠가 강세다. 그리고 ‘음식을 넣고 우물거리는 입’을 클로즈업하는 것도 여전하다. 남의 입에 음식이 들어가서 뭉개지는 모습을 대형 화면으로 보는 건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_04. 방송뿐 아니라 광고도 여전히 연예인, 특히 아이돌 천지다. 정말 날로 먹는단 생각이다. 내게 있어 한국의 연예인은 바깥세상의 어뷰져다. ‘요즘 방송에 일반인이 자주 나온다’고 불평하던 연예인의 멘트는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_05. 쓸데없이 남발하는 자막도 여전하다. 보고 있자면 시력과 더불어 사고 기능까지 떨어지는 것 같아 안 보려 해도 자꾸 눈이 간다. 내가 방송사 오너가 되면 자막 없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 편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편할 텐데. 그러고 보니 쓸데없이 패널들 잔뜩 나오는 방송도 여전하다. 너희도 아웃.
_06. 모 게임의 이름이 이웃의 아이디와 같은데 TV를 켤 때마다 들린다. 일단 광고 자체가 게임을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들어진 데다 합창하듯 외치는 ‘다운로드’라는 멘트가 거슬린다. ‘업로드’였으면 덜 했을까.
_07. 사람만 보면 브레이크를 밟는 세상에서 살다가 사람만 보면 돌진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니 짱난다. 차에서 내리면 자기도 보행자라는 걸 모르나.
_08. 유니클로에서 청바지를 샀다. 그리고 실패했다. 유니클로는 내 옷장을 채워 주는 곳간이었는데 3년 만이라 감을 잃었다. 게다가 해당 모델; 울트라 스트레치 진은 출국 전 딱 한 벌 산 게 전부라 더욱 감이 없었다. 허리에 맞추면 허벅지가 끼고 허벅지에 맞추면 허리가 남았다. <곧 더워질 텐데+혈액 순환=허벅지에 맞춤>을 선택했는데 실패! 칼님의 조언에 따라 다음에는 무조건 허리에 맞출 테다.
_09. 카페, 특히 스벅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다. 그리고 가방을 옆자리에 올려놓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아니 솔직히 99%다).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자리가 없어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많을 땐 알아서 치워 주면 좋으련만. 그런 상황에선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나까지 미안해진다.
_10. 전철은 말할 것도 없고 길거리에서 스맛폰 쓰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심지어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면서도 스맛폰을 쓴다. 한강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 중에도 분명 있을 것 같다.
_11. 잠깐의 생활에도 돈이 훅훅 나간다. 100기가 데이터와 문자/통화 무제한, 심지어 유선 전화로의 국제 통화도 무제한인 요금을 19유로에 쓰다가 쥐똥만큼의 데이터를 비싼 돈 내고 쓰려니 속이 쓰리다. 요금제는 몇 페이지를 넘길 만큼 많은데 정작 쓸 만한 게 없다. 게다가 왜인지 모르겠는데 데이터가 훨씬 빨리 닳는 느낌이다. 오히려 온종일 듣던 애플뮤직도 끊었는데. 어쨌든 돈이 많이 든다. 어렵게 모은 스달을 반이나 팔아야 했다.
_12. 아이폰4s의 30핀 충전 케이블이 드디어 맛이 갔다. 다행히 전철역 지하상가에서 3,500원 주고 새로 하나 샀다. 사장님 고마워요.
_13. 사람이 너무 많다. 거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는데 길거리가 편하지 않다. 세 보이려고 기를 쓰는 애들도 여전히 많다. 길거리든 술집이든 물리적 힘에 따른 자신의 우위를 점해야 속이 편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 폭력에 너무 둔감한 사회 아닌가 싶다. 들어오자마자 들었던 집단 폭행 사건도 그냥 일어난 건 아닐 거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기반하지. 언제나.
_14. 순도 높던 파란 하늘이 없다. 언제나 놀라운 스펙트럼을 보여 주던 해 질 녘이 없다. (해 질 녘 정도는 이제 합성어로 인정해주자, 국립국어원아)
_15. 그래도 하나 좋은 건 있었다. 추억의 장소가 곧잘 사라지는 한국, 특히 서울에서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아지트. 홀과 창가에 놓인, 그곳과 그닥 어울리지 않던 테이블과 의자를 바꾼 것을 빼면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게 고마웠다. 기억 그대로 거의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어 준 것이. 당시 공사 중인 분점으로 간다 했던 바텐더가 아예 업계를 떠났다는 것, 3호점 준비로 하필 그날 자리를 비운 사장님을 못 만난 건 아쉬웠지만, 언젠간 또 보겠지.
_16. 프로필 사진의 배경을 바꿨는데 색깔 논란ㅋㅋ이 있어서(주황 vs. 노랑) 스포이드로 찍어 봤다. Vivid orange로 나오는 걸 보니 주황색이 확실하다. 살짝 더 진했으면 서울 택시 색깔이라고 해도 맞았을 것이다. 그래도 노랑으로 본 분들을 이해한다. 그라데이션이기 때문에 어딘가를 찍으면 노랑으로도 나올 테니까. 또 씽키님 의견대로 다른 색(노트의 검정)이 인식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검은 바퀴를 가진 람보르기니 특유의 주황색(아란치오:오렌지)이 노란색으로 오인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_17. 아무튼 누군가는 이런 내 성격을 집요함으로 보겠지만 나는 사실을 중시할 뿐이다. 사실이 왜곡되는 걸 중딩 때부터 싫어했다. 공과를 명확히 따지는 것도 그런 탓이다.
_18. 여기서 끝내면 안 되는데.
_19. 마의 18번을 넘기고 Carla Bruni의 Stand by your man에 대해. Bruni의 불어 노래를 들으면 프랑스 생활 초기가 떠오른다. 집에서 정말 많이 들었다. 거대한 소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난 창문을 열어놓고 한가로운 오후의 햇살을 즐기던 느낌이 내 몸에 아직 남아 있다. 영어로 부른 이번 앨범은 나오자마자 들었는데 본연의 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서 즐겨 듣진 않았다. 그래도 우연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이 노래가 나오는 걸 들으니 반가웠다. 정말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