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아이들이 노는 하천에 소주병을 던지는 취객들이 있었다. 소주병은 깨져서 하천 바닥의 자갈에 섞였다. 그 모습을 본 나와 일행들은 경찰을 불렀다. 하지만 경찰이 뭘 하겠는가? 우리는 뭘 기대했을까? 당연히 훈방조치. 아마 그 취객들은 재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 날 다시 거기서, 재수 없었던 전날을 안주 삼아 다시 술을 마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하천에서 놀다가 병 조각에 발을 다쳤을지도 모른다. 한두병을 던진게 아니니 확률이 꽤 높을 것이다. 만약 아이가 다쳤다면, 아이의 고통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식사를 하는데 가게 유리창 너머에 십수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간간히 섞여있었다. 그들에게 담배는 귀한 모양인지, 세명이 한조로 한 개피를 한모금씩 번갈아가며 피우기도 했다. 길목을 완전히 막고 있고, 영업에도 방해가 되니 누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경찰이 도착했지만 학생들은 흡연을 멈추지 않았다. 내용은 듣지 못 했지만 학생들이 경찰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학생들은 짝다리를 짚고 담배를 피우면서 고개를 기울이고 침을 뱉으며 경찰을 쳐다보았다. 이내 경찰은 돌아갔고, 학생들은 아주 조금 자리를 옮겨서 다른 길목을 막았다. 편의점 앞에 있는 테이블을 점거하고 있었는데, 바닥은 온통 침 범벅이었다. 그 바닥을 청소해야 할 사람의 고통은 누구의 책임인가?
카페에는 흡연실을 이용하지 않고 야외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많은데, 내가 듣기로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워 옷에 냄새가 배면 부모나 선생이 의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손에 최대한 냄새가 안 배게 하려고 나무 젓가락을 이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카페 점원은 몇번이나 저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최근에 멱살을 잡으려는 학생들을 만난 이후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제는 유독 힘들었는지,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취객들이 싸우는 바람에 경찰이 한 차례 다녀갔다는데, 이번에는 시비를 거는 취객이 있었다. 시작은 왜 미성년자의 신분증을 검사하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점원은 술을 파는 곳이 아니라서 신분증을 검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말다툼은 한참 이어졌다. 그 취객은 그 전부터 있던 학생과 아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취객은 학생의 부모는 아니라고 한다. 취객은 그 학생과 주차장으로 나가서 몇마디를 나누더니, 이내 다시 카페로 들어와서 점원에게 소리를 질렀다. 점원의 고통은 누구의 책임인가? 그리고 카페에 앉아서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는 나의 고통은 누구의 책임인가?
일차원적인 시각을 가졌다면 학생들과 취객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고통을 덜어낼 수 있었을까? 사회문제는 항상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책임 소재가 뚜렷하지 않고, 그래서 해결하기도 어렵다. 해결하기 어렵고, 책임 소재가 뚜려하지도 않은 사회문제들을 바라보며 찾아오는 고통은 앎의 책임인가? 아니면 생각을 하는 나의 책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