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자다.
나는 내 박사학위 논문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여 PhD, 즉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Postdoc 과정도 거쳤고,
내 논문도 10편 정도 있으며,
현재 “Research Scientist”라는 직함으로 일하고있다.
그렇다. 나는 과학자다.
[내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지금은 학력이 인플레이션된 시대다.
고학력자가 넘쳐난다.
공급이 수요를 아득히 초과한다.
공급은 마치 다단계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교수 한 명이 대략 10명의 박사를 배출한다고 하면,
그 제자 박사 중 일부가 다른 곳 교수가 되고,
각각이 또 대략 10명의 박사를 배출하고,
그 제자의 제자 박사 중 일부가 다른 곳 교수가 되고,
각각이 또 대략 10명의 박사를 배출하고 ....
2~30년 후엔 공급이 과다해짐은 당연하다.
(순수) 과학자는 어떻게 돈벌어 살아가는가?
(순수) 과학자의 목줄은 정부가 쥐고있다.
국민의 세금이 정부의 예산이 되고,
정부의 예산 중 일부가 과학연구기금에 할당되고,
과학자는 (연구소 연구원이든, 대학 교수든) 제안서(Proposal)을 써서 그 연구기금의 일부를 따와야한다.
따온 돈을 소속 기관이 월급의 형태로 지급한다.
정부의 예산이 박사의 공급마냥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언제부턴가,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프로포절을 쓸 때,
PI(프로포절의 주인)조차 하나의 프로포절에서 자신의 전체 인건비, 즉 100%를 청구하지 못하고 있다.
같이 참여하는 Co-I는 말할 것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쟁이 너무 치열하니, 프로포절의 전체 청구 금액을 줄여 선택될 확률을 높여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의 프로포절로는 감당이 안되니 여러개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자기할인'은 늘어만 가고,
그럼에도 느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희망고문뿐이다.
거기에 더해진 치(명적)타(격).
환경문제를 경시하고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대통령...
내 과학자로서의 삶은 여기까지인가보다.
과학자로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연구 능력?
과학자에게 연구 능력은 숨쉬기 능력만큼 당연한 것이다.
걔중에도 특히 숨을 더 잘 쉬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이 더 잘 쉰다고 자랑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글 쓰는 능력이 중요하다.
논문 쓰는 능력?
논문 쓰는 능력은 비유하자면 밥 숟가락 놀리는 능력 정도 되려나...
중요한 건 밥을 얻어오는 능력.
그것은 프로포절을 잘 쓰는 능력.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혹하게 만드는 언어능력.
그게 나는 부족하다.
그래서 내 과학자로서의 삶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막다른 골목.
이제 나는 무얼해야 할까.
요즘 머쉰러닝이 대세인데, 나도 거기 뛰어들어볼까?
그럼 어떡해야할까? 대학원이라도 다시 다녀야할까?
그동안 내 연구를 위해 프로그래밍은 좀 써왔으니 프로그래머가 되어볼까?
"박사후 10년이라는 경력"의 편견을 깰 만큼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기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할까.
1000시간? 10000시간?
연구Research는 어차피 거기서 거긴데,
순수과학이 아니라 돈에 밀접히 연관된 분야로 들어왔다면 좀 더 행복했을까...?
View가 36인 시점에 덧붙입니다.
몇 달간 생각해온 내용인데, 막상 글로 정리하니 느낌이 다르네요.
감정이 북받쳐올랐다가 좀 시원해졌습니다.
그동안 생각만 했을 때는 마음 한켠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했었나봐요.
이 글을 작성하면서 고민을 했었어요. 쓸까 말까...
도태된 실패자의 이야기를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남들에게 널리 얘기하기엔 부끄러운 이야기죠.
혹시 여기 스티밋 kr 커뮤니티에 널리널리 퍼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었지만
기우였음이 드러났고
지금 이정도가 딱 좋은 것 같습니다.
(아마 못보시겠지만)
업보팅 해주신 분들, 응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