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에티오피아 여행 중 시미엔 산을 걸으면서
느꼈던 이야기 중 하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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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산길을 맨발로 따라오던 아이가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꼬맹이들이 마냥 사랑스럽지 않다는 건
그 곳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사실이다.
"you! you! you!"
어른에게 삿대질을 하며 따라온다.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달라고 하기도 하고, 간혹 돌을 던지는 놈들도 있다.
짠한 마음에 줄 만한 것이 없는지 떠올려 보지만,
이런 애들 하나하나 다 신경쓰다 보면 여기서 거덜나고 여행을 끝마쳐야한다.
최대한 그들을 쳐다보지 않고 내 갈길을 향해 앞만 보고 걷는다.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배낭을 매고 있는 내 뒤로 스무명 정도의 꼬맹이들이 줄지어 따라오고 있다.
왕의 행진을 연상케 한다.
행여 눈이 마주치면 약속한듯 두손을 모은다.
무언가를 달라는 뜻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한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나를 가만두지 않는 그들이 지겨워졌기 때문이다.
한창 엄마에게 응석부릴 대여섯 살 짜리의 꼬맹이라는 사실도 잊었다.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그들이 귀찮고 짜증났다.
누군가 악마들이라고 표현했던 말에 조금씩 공감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노력없이 쉽게 돈을 벌게 하면 안되"
내 마음은 점차 이렇게 태어난 그들의 운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미엔 산을 걷던 어느날이었다.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가려면 며칠을 걸어야하는 그런 산골짜기였다.
뒤에 다섯살 정도로 보이는 작은 꼬맹이 하나가
조용히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부터 따라왔는지는 모르지만 늘 하던 대로 못 본척 갈길을 걸었다.
길은 평소보다 더 거칠었다.
등산화를 신고도 자갈과 거친 돌들이 많아서 발이 불편했다.
고도가 높아서 인지 햇볕은 따가웠고,
메마른 땅은 우리가 지나가고 나면 트럭이 지나간 것처럼 흙먼지가 휘날렸다.
1시간여를 걷고 배낭을 내려 놓고 앉았다.
아까부터 따라오던 그 꼬맹이는 아직까지 집에 안가고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머리가 내 허리정도에 오는 그 어린 애는 메고 있던 보자기를 풀렀다.
그 보자기 속에는 콜라 두병이 들어있었다.
당장 그 콜라를 사서 들이키고 싶었지만 애써 못본채 했다.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는 듯 가격을 말해준다.
한병에 천원 조금 안됐나?
나는 그 아이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 N O ! "
그 콜라가 너무 마시고 싶었지만 왠지 그러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게 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어린나이에 쉽게 돈을 벌면 안되니까,
어릴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되는 거니까.
3000m 가 넘는 고도 때문인지 걷는게 쉽지 않았다.
숨이 차오른다.
오늘은 유난히 길에 왜 이리 자갈이 많은지,
또 왜 이렇게 뜨거운지, 먼지는 왜 이렇게 많이 날리는지.
숨을 헐떡거리며 1시간을 더 걸었을 때 즈음
아까 따라오던 아이가 내 옆으로 와서 콜라를 마시라고 권유한다.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귀찮게 하니 더 약이 오른다.
이번엔 대답도 안하고 손사레를 쳤다.
1시간이 더 흘렀다.
1시간이 더 흐르는 동안 나는 그 아이의 말에 대답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건 만난지 3시간이 넘게 지난 뒤였다.
다섯살 정도로 보이는 그 조그만 아이의 손에는
차마 우리에게 던지지못한 돌멩이와
양쪽 뺨엔 이미 한없이 흐르다 말라버린 눈물자국
거친 길을 짧은 다리로 쫓아오느라 엉망이된 맨발이 보였다.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아이는 말리버린 눈물자국 위로 또 다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던지지 못한 돌멩이는 땀과 눈물을 닦아내던 시커먼 소매자락으로 들어갔다.
콜라 두병을 팔기위해 3시간 넘도록 달음질 쳐온 그 아이의 상처난 맨발.
그 두 발로 버티는 다리는 이미 힘이 풀려있었다.
엄마 품에 안겨있을 나이의 그 아이는 마지막으로 나를 노려본채
눈물을 한번 훔치고 반대방향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죄책감을 받기 싫어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저 아이를 위해서 마음 아파도 그러면 안되!"
노력없이 쉽게 돈을 벌면
그 아이는 훗날 어른이되어서도 노력없이 살 것이라는 그런 합리화였다.
다음 날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랐다.
그 곳에도 콜라를 팔고 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4000m가 넘는 높은 곳인데도 여기까지 올라와서 콜라를 팔고 있다니...
중학생 정도로 되보이는 나이.
고민없이 콜라를 샀다.
그 아이 보다 두배나 비쌌지만 이곳은 산의 정상이고 열악하니까.
"그래, 이 정도 노력하면 사줘야지!"
콜라를 사 놓고 옆에 있는 스카우트에게 줘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캠프사이트가 학교 운동장에 있어서,
그 곳 선생님들과 모닥불을 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겐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2시간 동안 산을 넘어서 오는데,
그럼에도 집에서는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학비도 학비지만,
부모님들이 집안일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도 떠와야 되고, 장작도 구해와야 되고,
콜라도 팔아야 되니까.
아이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집에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은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그 어린것이 알면 뭐 얼마나 안다고 돈을 벌려고 하겠는가.
지금 그 아이를 도와준다면 노력하지 않고 살거라고?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한없이 뛰어놀고 사랑받을 나이인데,
도대체 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난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이야. 내 진짜 마음은 그게 아니었어.
그 날 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그제서야 알았어.
물한 모금 먹지 못하고 목이 마를 때,
너의 그 보따리에 있던 콜라가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