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나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
내가 좋아하던 반찬은 햄, 소세지, 그리고 고기였다.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몸에좋은 음식이라며 나물이나 야채를 먹길 권유했지만
어린시절부터 난 적어도 음식에 관해선 주관이 뚜렷한 아이였다.
어쩌다 밥상에 고기가 올라오지 않으면 나는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울고 보채며 단식을 시작할 정도였다.
이런 나의 고기사랑은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여전했다.
더불어 콜레스트롤 수치와 지방간 수치도 함께 자라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받았던
건강건진에선 의사선생님에게 이건 학생의 간이 아니라 접대를 하는 샐러리맨의 간이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고기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전날 갈비를 먹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삼겹살을 구워먹는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그런 어른으로 성장했다.
이런 나의 고기사랑이 얼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는지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가 있던 날,
날 처음본 후배들은 "어머. 저 오빠는 야채따윈 먹지 않게 생겼어." 라고 수근거렸다.
새학기가 시작하고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인가."
그 날도 대낮부터 고기를 구워먹다 쌩뚱맞게 떠오른 생각이었다.
갑자기 모든것이 참을수 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고기를 입에 쑤셔넣는건
멈추지 않았다. 고기를 우물거리며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를 찾아 떠나자.'
그리고 나는 템플스테이를 가기로 했다.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더러운 때를 씻어버리고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는 개뿔, 사실 그 때 학교에서 주관하는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면
공짜 학점을 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친구들과 함께 절로 떠났다.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매일 건물들로 둘러쌓인 도시에서 생활하다 경치좋고 공기도 좋은
산으로 가니 나름 기분전환이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뿐이었다. 본격적인 절생활이 시작되면서 나는 절과는 맞지않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선천적으로 정서불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내 성격에 몇 시간동안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참선시간부터가 나에겐 고문이었다. 번뇌가 사라지긴 커녕 온갖 번뇌가 머릿속을 뒤덮었다.
그리고 가장 괴로웠던건 식사시간이었다.
아무리 밥상위를 살펴봐도 온통 푸른색이었다. 단백질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가 없는
식단이었다. 거기다 양도 적었다. 밥을 먹는둥 마는둥 깨작거리다 결국 첫 날 밤부터 나는 몰래
숨겨온 간식들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식마저 금방 동이 나 버리고 그때부터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머릿속엔 온통 고기 생각뿐이었다.
쉬는 시간에 멍하니 앉아 숲 속을 보다 혹시 저 숲 속에 노루나 멧돼지 같은 산짐승들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숲 속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친구들이 뜯어 말렸다.
이제는 한계였다.
결국 나는 탈출을 감행하기로 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일찍 일어난 나는 조심스럽게 절 밖으로 나섰다.
아침에 몰래 시내까지 나가서 고기라도 한 점 먹고 올 심산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를 타고 가도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에 길눈까지 어두워
가다가 조난자가 되기 십상인 상황이었지만 이미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미 그 시점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나의 종아리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붉은 발이 되느니 차라리 조난당하고 말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절을 몰래 나가려다 나는 그만 아침을 준비하러 온 보살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아줌마는 날 보며 물었다.
"학생. 새벽부터 어디가?"
나는 한참 망설이다 결국 솔직히 얘기하기로 했다.
"아줌마.. 고기... 고기가 먹고 싶어요.."
그런 보살님은 내가 딱해 보였는지 나를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잠깐 기다리라며
안에서 뭘 내오기 시작했다. 보살님이 가져온 건 봄나물과 고추장을 넣고 비빈 비빔밥이었다.
고기를 기대한 나는 내심 실망했다. 하지만 보살님의 성의를 생각해 수저를 들었다.
한 수저를 입에 넣은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건 바로 천상의 맛이었다. 그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던 풀떼기들이 입에 넣는순간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처럼 상쾌한 기분과 봄햇살처럼
따뜻한 기운이 온 몸을 뒤덮었고 나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비빔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내가 마치 초원을 뛰어노는 토끼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항상 봄이 되면 봄나물비빔밥을 먹는다.
물론 일 년에 한 두 번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