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잊지못할 과거가 있지요.
제겐 중학교 2학년과 3학년이 절대로 잊지못할 과거입니다.
이 이야기는 저의 인생이야기 입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3년 전부터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초기엔 잘 되지않았죠.
고생하다 3년이 지나고나서부터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본격적으로 제궤도를 찾아 성장일로를 걷기 시작하였는데...
예고도 없이....교통사고로 인해 돌아가시게 된 겁니다.
그로인해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되셨습니다.
사업이란 것이 모두 그렇듯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도 성공 할똥말똥 하지요.
아버지의 사망보험금과 가해차량 운수업자의 보상금이 합해져 사업에 재투자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리셨습니다.
아버지의 목숨과 바꾼 보상금으로 이룬 사업이었기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피곤에 지친 몸으로 돌아오시는 어머님은 집에서는 거의 잠만 주무시게 되었죠.
집에는 언제나 저와 제 동생 이렇게 둘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희 형제를 하나하나 챙겨주실 수 없었던 어머님은 도자기 안에 넉넉한 돈을 넣어주셨고
돈을 쓴 사용처만 종이에 잘 적어놓으면 다음날 도자기 안에는 변함없이 같은 양의 돈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부재와 일로 인한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미안한 마음을 금전으로나마 채워주시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간섭하는 사람도 없겠다 돈도 있겠다 그때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고 친구들과 술도 마셨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당연히 소위 '노는 아이들'부류에 들어가는 첩경이었고 저 또한 그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었죠.
결국 반에서 3등으로 성적이 추락하게 되었습니다.(위에서가 아닌 밑에서)
물론 이전에도 천재소리를 듣던 그런 아이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선을 넘게 되었죠.
중학교 3학년이 담배피고 술마시고 결국 패싸움이 나서 어머님이 학교에 불려오시게 되었습니다.
실상 그 이전에도 어머님을 학교로 모시고 오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사업하시느라 통화도 할 수 없고 한밤중에나 오신다고 둘러대며 피했었는데..
결국 선생님은 어머님 회사 전화번호를 알아내시어 제가 모르게 면담을 하셨더랬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들과 노닥거리다가 11시쯤 집에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꺼져있어야 할 집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어머니는 혼자 마루에 앉아계셨습니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죠.
"여기와서 앉아라"
"오늘 학교에 갔다왔다"
"전교에서 꼴찌를 해도 엄마는 상관하지 않는다"
"네 인생 네가 사는 거니까"
"그러나 애비없이 여자 혼자 키워서 저런 꼴이란 얘기로 네 아버지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신 어머니께서는 부엌칼을 꺼내 탁자 위에 힘껏 꽂으셨습니다.
(말로 표현하니 이렇지만 실제로 저와 같이 그 자리에 계셨다면 어머니의 행동이 얼마나 위협적이었었는지를 아셨을 겁니다)
"네가 아버지의 이름을 계속 욕되게 하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너와 나 그만 살도록 하자"
"어짜피 나는 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부터 더 이상 살기싫었는데 너랑 네 동생 때문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날...
어머님께 약속하였습니다. 반드시 바뀌겠노라고 그리고 앞으로 절대 아버지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없게 살겠노라고.
혹시 '타임'이라는 각성제를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노는친구들은 끊고 타임을 밥삼아 먹으며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자지않고 진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지만 그때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한 연합고사를 봐서 총점 200점 중 140점대 이상을 받지 못하면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수 없었고 그럼 당연히 대학에 갈 수 없음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공업계, 상업계 고등학교도 120점대는 맞아야 했었죠.
물론 제 성적은 당시 체력장 20점을 합해도 100점도 되지 않았었고요.
결국 저는 연합고사에 189점을 맞아 당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중학교 담임선생님은 제가 행한 일을 기적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일 세네번씩 코피를 흘릴 정도로 정말 말도 안 되는 노력을 했던 6개월이 지금의 제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바뀐 인생은 당시에는 살 떨리도록 칼을 꽂아가며 진심을 가득 담아냈던 어머니의 말씀과 울림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습니다.
아마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순~해보이는 얼굴로 사기나 치고 다녔을지도 모르지요.(사기꾼들이 보통 순하고 사람 좋게 생겼다더군요)
주저리주저리 제 인생 이야기를 한 오늘 '제 인생을 바꾼 칼날'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고나니
이유도 없이 부엌칼을 좋아하는 제 자신이 이해가 됩니다..
언젠가 포스팅하겠다고 해놓고 아직도 자료를 모으지 않아 쓰지못한 부엌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