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정동야행에서 구입한 향초가 있습니다.
투명한 젤캔들의 라일락 향이 좋아 꽤 오래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닳을까 아까워 불도 못피우고 향만 맡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적 저는 라일락과 라벤더 향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라'씨 성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들의 이름을 일락이와 벤더, 이온이라 짓고싶다는 생각도 했답니다ㅎㅎ
오늘 아침 문득 그 향초 특유의 라일락 향이 떠오릅니다.
방 한구석에 있던 오랜만에 피운 향초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오늘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인, 상강霜降입니다.
따뜻한 향초와 따뜻한 문구로 마음이 데워지니 참 감사합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다.
몸이 아프기 시작해서 마음도 아픈 상태라는 걸 알았다.
무너진 마음과 몸에 충분히 아파하며 느끼는 시간이 조금 진하게 필요했나보다.
근원적인 것과 진리에 기초해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일이
언젠가 예쁜 결실을 맺게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숨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숨는 게 아닌 드러냄으로 모든 걸 품을 수 있는 우리가 되자.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겠다.
다시 한 번 되뇐다.
스치는 바람에도, 지치지 말기를.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사라지고 멀어져버리는데도 사람들은 사랑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건 사랑의 잘못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위력이다.
시간의 위력 앞에 휘둘리면서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우리들의 내부에 사랑이 숨어살고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아이였을 적이나 사춘기였을 때나 장년이였을 때나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을 관통해 지나간 이름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신경숙 #아름다운그늘
그래도 이젠 손에 책이 잡히고 글이 써지고 어떤 생각도 할 수 있으니
조금의 여유는 다시 되찾은 걸로.
가을의 서리를 따뜻하게 맞아보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