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게 되면서 시집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한 권 한 권, 나름으론 신중하게. 고르는 이유도 조금씩 변해갔다. 처음엔 '내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은' 시들이었고, 지금은 '시인이 말하고픈 이야기가 담긴' 시가 더해진다. 계기는 영화 '패터슨'과 시인들의 인터뷰였다.
매체에 등장하는 시집은 단박에 베스트셀러 자리에 안착한다. 사람들은 그에 반응한다, 시집을 사거나 서점에서 시집을 찍거나(물론 이건 불법이지만) SNS에 올라온 이미지를 캡처하는 형태로. # 표시의 태그는 한없이 늘어간다.
하지만 정작 시집 안의 시를 읽는 이는 얼마나 될까. 화면에 노출된 시 이외에 다른 시까지 궁금해하는 이들 또한 얼마나 될까. 시를 읽지만 드러내지 않는 이들보다는 차라리 이들이 나을까. 마케팅으로 활용이라도 할 수 있으니. 잘 팔리면 더 낼 수 있다, 는 말은 왜 유독 시집에 더 혹독하게 적용되는 것 같을까.
아이돌 시인 - 이런 말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 이라 불리는 이들의 시집이 잘 팔리면 그렇지 않은 시인의 시집을 더 낼 수 있다, 는 말은 사실일까. 시가 좋아서가 아니라 유명시인의 명성에 기대는 것 같은 현상은, 누구에게 좋은 걸까. 시인일까 출판사일까 서점일까.
시인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다. 물론 그들이 만든 시가 집을 이루는 일 또한 그럴 것이다. 과연 마음에 남으며 오래 기억되는 시도 많아지고 있을까. 시인들은 그들이 쓰고픈 시를 쓰고 있을까. 500번을 넘고 100번을 넘어도 여전히 떠올려지는 시가 그 안에 드물다는 건 자기계발서 같은 인스턴트 시가 늘어가는 것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훑어가는 시가 많아진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시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테니. 그런데 아쉽다, 세상의 겹겹을 예민하게 들여다봐주는 시가 어쩐지 줄어가는 것 같아서. 그런 시를 쓰는 시인들이 힘겨운 것 같아서, 그들의 시집이 재고라는 이름 아래 외면당하는 것 같아서. 트렌디함을 내켜하지 않는 시인들이 시 쓰기가 버거워지는 것도 같아서.
시인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정당한 댓가가 제때' 가닿으면 좋겠다. 트렌디하지 않아도 아이돌 시인이라 불리지 않아도 시 쓰는 데 불편함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시집이 너무 빨리 절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집이 나오자마자 사야 하는 이유). 시인이라 불리고픈 이들이, 덜 척박한 환경에서 시를 깊게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