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보들레르는 동료나 후배의 신간에 들어갈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해당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왜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냐고? 그냥 자기 글이 쓰고싶었고, 그것을 어딘가에 실을 명목이 필요했고, 읽어줄 사람이 필요(이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독자에는 큰 관심이 없다.)했기 때문이다.
을마나 글이 쓰고싶었으면. 하고 싶은 말이 그릏게나 많았다는 점이 부럽다. 나는 왜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고 말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정리되지 않는걸까? 입에서 나가는 말도, 손으로 써지는 말도 모두 뒤죽박죽 상태일 때가 많다. 내 안에서는 A글과 B글이 분명 연관이 있어 A+B를 쓰고 싶은데 그 연관성을 납득이 가게 증명하지 못하고 매끄럽게 연결하지 못하는게 답답하다.
오랜만에 읽고 싶은 책이 생겨서 학교 도서관에 가 두 권을 빌려왔다. 좋은 과학 도서들을 많이 출판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이언스북스>의 책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스스로가 '사고하는 속도', '사고하는 방식' 이 타인에 비해 부족한 것같다는 생각에 (아주 잠시) 좌절한다. 그래서 일단은 몇몇 타인들의 생각을 빌려보기로 한다. 아왜, 그림그리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좋아하는 예술가나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모작하면서 시작하잖아.
최근 읽은 논문에서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했다. 흔히들 우리가 알다시피, 타이레놀의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의 대사체 중 하나는 간 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통제를 선택할 때에 타이레놀이 아닌 다른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약사 역시 다른 약을 권하기도 한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진통제는 타이레놀이라고 관용처럼 여겨지기에 그 매출은 쉬이 줄지 않는데, 특히 과음을 하고 밤에 두통이 올 때 타이레놀을 섭취해 두통을 줄여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때에는 아세트아미노펜의 대사체 중 간 독성이 큰 물질로 변하는 비율이 높아져서 유독 간 독성이 커진다. 그리고 내가 읽은 논문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 섭취시 그 간 독성이 오전 시간대보다는 오후, 밤 시간대일 수록 커진다는 주장을 펼쳤다. 원인으로는,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장내 미생물을 들며 대사하는 효소의 차이를 내세웠다. 안그래도 술 마시고 타이레놀을 먹으면 간에 안좋은데, 밤에 먹겠다고? 그럼 더 안좋지!
그럼 시간대별로 타이레놀의 효능이 달라지진 않아? 하며 동생과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연구를 빌려 내 머리를 굴려보려고 찾는데 하루생체 리듬대별로 나누어서 실험한 결과는 없었다. 동생이랑 와 진짜 궁금하다하면서 꽤 오래같이 이야기하고 고민을 하다가 결론은 '근데 언니 밤사 가봤어?' 로 넘어가 결국 8월이 가기전에 놀기로 약속을 한다. 술 마시는 것을 크게 즐기지 않는 나를 홀릴만한 말재간을 가진 동생덕에 엉겁결에 스케줄러에 떡하니 진짜 오랜만에 <술 약속> 을 적어놓게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