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들어왔지만, 그래도 글을 쓰고 싶어서 마감 기한에 쫓기는 작가에 빙의해 글을 씁니다. (12시 전에 올려야 해!)
공연 날이 점점 다가오면서 구체적인 내용도 얼추 정리되고 있습니다. 음악도 약 2/3 정도는 완성됐어요.
처음 연습실에서 다 같이 모인 날.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길게 나누고, 헤어지기 전 각자 느끼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해보기로 했어요. 즉흥으로 8분 정도 합을 맞췄습니다. 그때 영상을 남겨뒀는데 그 느낌이 무척 좋았어요. (저는 무조건 첫 느낌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곡도, 정해진 시간도 없었습니다. 내가 이해하는 텍스트와 무용수의 움직임에만 반응해 연주했어요. 악보도 없다 보니 의지할 곳은 사람뿐이더군요. 얼마 안 되는 몰입의 순간이었습니다. 재즈에서 말하는 '인터플레이(Interplay)'를 느꼈어요.
그때 즉흥으로 했던 움직임은 모두 버려졌지만, 저는 8분짜리 영상에 있는 음악적 모티브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날로 먹는 것이지요. 그 8분짜리 영상에 이 작품의 모든 음악이 다 들어있다 해도 무방합니다. ㅎㅎ
점차 안무가 정해지면서 즉흥으로 했던 연주를 곡의 형태로 다시 다듬었습니다. 연주의 길이와 연주 방법을 정리했어요.
짜임새를 갖추다 보니 오히려 즉흥으로 연주했을 때의 감정이 사라집니다. 저는 악보를 보느라 여념이 없고, 어떤 방식으로 연주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틀리지 않는 데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음악은 더 정교해졌지만, 왠지 모를 찜찜함이 계속 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즉흥과 짜임에 대해 생각해보았어요.
늘 즉흥으로만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몇 번은 감정에 취해 기가 막힌 작품이 나올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딘가 아쉬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짜여진 음악이 좋은가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짜인 것들은 신경 쓸 게 많기 때문에 더욱 몸이 굳거나, 함께하는 이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 고민해 보았어요. 간단한 답이 나왔습니다. 치밀하게 짠 후, 충분한 연습으로 즉흥 때처럼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맥 빠지는 답이지만, 연습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즉흥으로 했던 연주가 악보에 갇히면서, 메트로놈에 갇히면서 좀 답답해졌습니다. 여기는 빠르게, 여기는 느리게 하고 싶은데 일정한 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연주하는 게 가끔은 지루하게도 느껴지네요. 자유롭게 했던 셈여림도 이제 슬슬 정리해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투덜대긴 했지만, 곡이 충분히 숙달되면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빠르기를, 또 셈여림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제 웬만큼 만들어졌으니, 정말 연습을 해야겠어요. 맨날 말로만 연습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요즘은 매일 연습실도 가고 있답니다.
그리고, 오늘은 또 다른 작업에서 뼈아픈 실수를 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을 때, 혹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 해내지 못했을 때, 그때 마음이 가장 괴롭습니다. 그럴 때 저는 한 시간 정도 핸드폰을 꺼놓고 맘껏 괴로워하다가, 마음을 차분히 먹고 돌이킬 수 있는 실수로 만들려고 애씁니다.
오늘 제 작업의 주제가 즉흥과 짜임이라면, 부제는 실수와 받아들임이 될 것 같아요.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나의 실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반 이상은 해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주말엔 뒷수습을 열심히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