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다행히 레슨 전에 잠깐 손을 풀 수 있었다. 집중이 안 돼 손 풀기를 포기하고, 리얼북을 꺼내 이곡저곡 치게 되었다.
이 곡은 키스 쟈렛(Keith Jarrett) 곡인데, 몇 년 전 리얼북을 뒤적이다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제목이 궁금해 쳐봤는데, 치다보니 쾰른 콘서트(The Köln Concert)에 수록된 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쾰른 콘서트는 총 4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키스 쟈렛 콘서트 실황 앨범인데, 이 곡은 마지막 트랙인 Part IIc다.
재즈 얘기가 많지 않은 스팀잇인데도, 이곳에서 몇 번 쾰른 콘서트 이야기를 이웃들과 나눈 기억이 난다. 쾰른 콘서트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명반이라는 말조차 붙일 필요 없는 대단한 앨범이다. 개인적으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재즈 앨범인데, 특히 피아노 연주자라면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는, 들을 때마다 새로운 연주다.
앨범은 네 개의 트랙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네 트랙이라기보다는 앨범 자체가 하나의 곡이라는 생각으로 듣는다. 무조건 1번 트랙(Part I)을 시작으로 들어야 하는 앨범이지만, 굳이 트랙별로 나눈다면 나는 Part IIc만 따로 듣는다.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리얼북에 'Memories of tomorrow'라고 명명된, Part IIc의 곡이 따로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올 듯 말 듯 한 축축한 어제 날씨와 잘 어울렸다. 가볍게 치기에 너무 느리지 않은 적당히 빠른 템포도 재밌었고, 안 그래도 며칠 전 저 곡이 생각나 건반을 더듬었던 적도 있었다. 레슨 시간까지 열심히 친 후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Part IIc를 반복해 들었다.
리얼북에 있는 악보는 코드도, 멜로디도 틀린 것투성이다. 심지어 내가 이 곡에서 가장 좋아하는 화성인 Em7의 9음인 F#음도 빠져있는데(순식간에 Dorian으로 만들어주는!), 그래서 오늘은 더 정확한 쾰른 콘서트 악보를 보고 싶었다.
축복스럽게도 쾰른 콘서트는 처음부터 끝까지(Part I부터 Part IIc까지) 2단으로 제작된, 꽤 정확한 피아노 악보가 있다. 오랜만에 그 파일을 꺼내 Part IIc를 뽑아 짧게 연습했다.
리얼북을 보고 칠 때는 들어서 알고 있는 멜로디와 코드를 적당한 보이싱과 리듬으로 쳤지만, 2단 악보를 뽑아 연습하는 것은 간단한 리드싯을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 된다.
무리 없이 쳤던 곡인데도, 첫 마디도 치기 어려울 만큼 어지럽다. 2단 악보를 처음 익히는 날은 내가 돌대가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도를 나갈 수 없다. 신기한 것은 연습하지 않아도, 며칠만 지나면 능숙하게 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역시 네 마디를 넘어가지 못하고 뱅뱅 돌았지만, 며칠 연습하면 금세 나아질 거라는 확신이 들어 즐거웠다.
< Keith Jarrett - Part IIc >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아름다운 곡, 아름다운 연주.
곡 자체도 덧붙일 말이 없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연주가 끝나고 마지막에 페달로 이어지는 E음이다. 페달을 떼기 전에 박수가 나온 게 아쉽지만, 그 박수마저도 숨죽이는 게 느껴져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박수 소리와 함께 들리는 페달 떼는 소리와 급기야는 군대 박수(?)처럼 변하는, 1분 이상 이어지는 박수 세례도 인상 깊다. 이 박수까지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역시나 1번 트랙부터 차례대로 들어야 한다. 그럼 나도 청중과 함께 박수치게 된다.
드뷔시(Claude Debussy)의 렌토보다 느리게(La plus que lente)도 짧게 연습했다. 이 곡은 올해 겨울 짧게 2~3주 연습했던 곡인데, 음악을 접하자마자 바로 연습을 시작하게 돼 진도가 더뎠다.
어느 정도 연습하다 그만뒀던 곡인데, 오랜만에 다시 치게 되었다. 몇 달 만에 처음 보는 악보인데도 신기할 정도로 능숙하게 음을 누르는 걸 보면서, 연습은 정말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손을 움직이는 연습도 중요하겠지만, 무작정 손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많이 들으면서 곡과 친해지는 작업이 더 큰 연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일정도 다 미루고 연습만 했지만, 정작 어제 받은 레슨 과제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어제 서인석()님이 쓰신 [음악챙김] 피아니스트의 근육을 읽었다.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를 치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건 근육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4시간씩 피아노를 친다고 할 때, 피아니스트의 손은 490km를 간다고 합니다. 일년에 10번의 마라톤 운동을 손으로 하는 셈입니다. 그 정도로 근육을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특히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이 문단인데, 내 손이 건반 위를, 음 위를 걷는다 생각하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얼른 일상이 자리를 잡고, 간소해지고, 또 단단해져 오래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