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곡 입시 강사다. 올해는 레슨을 많이 줄였지만, 작년까진 꽤 바빴다. 올해 새내기가 된 학생 A가 공강이라며 케이크를 들고 찾아왔다.
대학에 처음 들어가면 입시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난다. 나도 그랬고, A도 그랬을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 밀린 회포를 푼다. 수업은 안 빠지는지, 합주는 잘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한가득 늘어놓는다. 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말로 뱉기는 참 쉽다.
A는 삼수생인데 원하는 대학을 가진 못했다. 이 상태로는 더 입시를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 아쉬운 대로 원치 않는 대학에 들어갔다. 처음 입학할 때만 해도 자퇴를 하겠다느니, 반수를 하겠다느니 의지를 불태웠지만, 오늘 모습을 보니 학교 사람들과 꽤 친해진 모양이다.
A가 재수를 할 시절, A의 소개로 B가 내게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B는 다른 전공이었고, 이미 '좋은' 학교에 합격한 상태였다. 대학에 합격은 했지만, 입학 전 화성학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공 레슨도 아니고, 이미 원하는 대학에 붙은 때라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수업할 수 있었다. 아마 B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B는 연락 없이 늦거나, 안 오는 날이 많았다. 오더라도 과제를 해오지 않았고, 나는 가끔은 그러려니 하다가, 가끔은 화가 나기도 했다.
두 달의 짧은 레슨 동안 B는 빠지거나 늦는 날이 더 많았고, 마지막 레슨 땐 오지도 않았다. 그 후로 아무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심 B를 미워하고 있었다.
A와 밥을 먹고 카페에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A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B 기억나시죠? B가 몇 주 전 자살했어요."
A의 입에서 나오는 B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이름과 얼굴이 쉽게 겹쳐지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기도 했고, A가 한 말이 쉽게 이해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A는 멍한 표정으로 B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최근까지도 잘 지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담담하게 둘이 동갑이었냐 물었고, A는 B가 동생이라며 98년생이라고 했다. 98년생. 그때부터 모든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98년생이 왜 세상을 떠나야 하지? 잠깐 눈물이 날 것도 같았지만, 우리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비겁하게도 내가 B를 미워하는 티를 냈는지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따뜻한 말을 건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와 레슨을 할 때도 힘들었을까? 수업에 자주 늦고, 연락 없이 오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와 관련이 있었을까? 왜 나는 몰랐지? 전공 선생님은 알았을까?
A와 그 이후로도 길게 대화를 나눴지만 나는 B의 생각뿐이었고, 집에 돌아와 B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부음을 읽었다. 기분 탓인가. B의 눈이 무척 슬퍼 보였다. 이미 장례까지 끝난 마당에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B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 B와 한 번 연락 할 일이 있었다. 음악하는 곳은 좁으니까,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됐다. B는 연락 없이 마지막 수업에 안 온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제일 먼저 그 얘기를 꺼냈다. 죄송하다고. 이제 와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그때 내가 웃었던가, 웃지 않았던가. 괜찮다고 했던가, 뭐라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