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친구집에 월세로 살았다. 우리 집은 단칸방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이 나는 참 무어라 설명하지 못할, 아픔이었다. 열심히 살아가시는 부모님께 가능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으나... 가난은 참으로 날 힘들게 했다.
초중고를 거치며, 가난한 형편은, IMF는 나를 주눅들게 했다. 친구들도 가능하면 나와 비슷한 형편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주변을 돌아봤다. 사촌동생들의 집이 하나씩 이혼을 했다. 없는 집안에는 없는데로, 그 가정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것이 맞다. 동생들의 아픔을 지켜보며, 솔직하게 나도 불안했다. 그리고 어른들을 원망했다.
나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가난하고 싶진 않았다. 어머니께서 아프시고, 병원에 가면서 나는 "돈"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 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도 힘드셨을 것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돈 있고 빽 있고 가방끈 긴 사람들은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무엇이든지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관리자, 기득권, 사업주는 돈을 벌었지지만, 상대적으로 노동자층은 갈수록 삶이 팍팍해졌다. 그것을 내 눈으로 몸으로 목격했다. 나와 우리 친척들은 대부분 못배운 노동자계층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방학이면 노가다를 했다. 어제처럼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 날, 아파트 공사장에서 폐자재를 정리했다. 마대에 아파트 공사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쓸어 담아 옮겼다. 장갑을 두 개나 꼈지만, 손끝을 칼로 베이는 것처럼 얼얼했다.
학기 중엔 도서관에 살았다. 도서관 계단에 앉아 혼자 밥을 먹었다. 시간의 촉박함, 가난의 탈출을 위해 친구는 사귀지 않았다.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더라도, 나에겐 연애조차도 사치라 생각했다. 츄리닝, 삼디다스 슬리퍼, 도서관 2층 창가 구석진 자리........... 그것만이 나의 자산이었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도, 아직 나는 가난에 벗어나지 못함을 느낀다. 부모님의 노후는 어떻하지? 불안하다. 너무나 불안하다. 혹시나 아프시면,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술자리도 좀 하면서 지내라는... 너무 재미 없게 사는거 아니냐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 친구는 부모님께 등록금을 받았다. 어느 친구는 부모님께 자동차를 받았고, 어느 친구는 결혼 자금을 받았다. 어느 친구는 부모님께 아파트 전세 자금, 아파트를 받았다.... 그 친구들이 부모님께 자산을 물려 받을 때...
나는 방학이면 혼자 말없이 인력소로 향했다. 공장과 노가다의 시작은 항상 방학이었고... 나는 세상에서 방학이 제일 싫었다. 재미없게 살아온 나의 젊은 청춘은... 나의 사회생활의 시작은 1천만원의 학자금 대출금으로 마이너스 인생으로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먹고 살았고, 수석 졸업으로 매번 장학금을 받았지만 나는 빚쟁이었다. 그것이 우리 사회 엿 같은 구조였다.
30년,.... 40년이 넘게 부모님은 오늘도 반지하 창고에서 미싱을 하신다. 친구에게도, 와이프에게도 못할 이야기를 여기에서 풀어본다... 말하지 못할 얘기들을 과연 앞으로 몇 % 나 들어낼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나의 이 행복이.. 언제 무너질 것인지 솔직히 불안하다. 내가 만약 아프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나의 자녀에게 까지 나의 힘든 어린 시절을 되풀이하도록 하고 싶진 않다. 적어도 평범하게, 보통의 가정처럼만........ 이란 욕심을 가져본다.
작년 처음 스팀잇을 만났을 때 나는 놀랬다. 지금의 우리 사회, 자본주의 사회는... 겉으로는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는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기득권.. 가진자들은 절대 자신의 이권을 놓지 않는다. 그 틈을 파고 들어가는 것은 정말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스팀잇은 양질의 콘덴츠로 평가 받는다... 라는 적어도.... 기회의 균등이 보였다.
물론 여기도 자본주의적 투자를 반영하고 있다. 많이 투자한 사람이 더 벌 수 있는 구조가 맞다.... 하지만 나는 헛꿈이라도 꿈을 꿔본다... 정말로 자신의 능력만으로 가난의 되물림... 그 거지 같은 사다리를 걷어 차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나의 헛꿈이 맞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