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두 글자는 나를 눈물 짓게 한다. 난 참 많이도 투정 부렸다. 난 참 많이도 짜증냈다. 초등학교 3학년, 같은 반 반장의 집에 월세를 살았을 때, 나는 가난에 대해 알았다. 엄마와 아버지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고, 가난하면 주인집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놀아야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 집에 가난한 것에 대해 크게 불만을 말했던 적은 없다. 딱 한 번, 고등학교 때 였나.... 아버지께서 실직하시고, 매일 술과 술주정으로 행패를 부릴 때, 나는 집안 선풍기를 부셔버렸다. 그리고 아버지께 말했다. "나는 가난한 것은 창피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은 부끄럽고 창피해!" 그리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엄마는 20살도 되기 전에 시집을 오셨다. 삼촌 4명과 고모 2명,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식사 한 끼에 라면을 준비하셔도.. 몇 십개를 준비해야 했다. 엄마는 그렇게 큰어머니 역할을 30년 넘게 해오고 계신다.
우리 집이 가난했다고, 내가 그리 금방 철이 든건 아니다. 12사단 최전방, GOP 제설작업과 근무를 서며,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군대를 다녀오면서 철이 조금 들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했다. 노가다판에서 아저씨랑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고생하다보니, 이제 좀 어떻게 살아야할 지.. 조금씩 막연함이 구체화되어 갔다.
대학교를 다시 들어갔다. 첫 학기 등록금만 부모님께서 도와주셨다. 그 다음은, 집안 형편이 도와줄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벽 5시 30분 보다 더 일찍 일어나셔서 일을 하셨다. 부모님께서 일하시는 곳은 반지하 창고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미싱일을 하셨으니까.. 벌써 30년도 넘었다....
20살의 아가씨였던 엄마는.. 그렇게 대가족을 돌보는 큰엄마로.. 두 아이의 엄마로.. 가정을 지키는 엄마로.. 30년 넘게 반지하에서 미싱을 한다.
나는 왜 그랬을까? 부모님이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 알면서도.. 왜 그리도.. 따뜻하게 부모님을 못 대했을까? 미싱 바늘에 손톱과 손가락이 구멍이 난 엄마는... 그래도 밥을 하고.. 미싱을 했다.. 나는 왜 더 따뜻하게 위로해 드리지 못했을까?
군대를 제대하고 아버지와 장사를 갔다. 오일장이었다. 집에서 만든 옷가지를, 리어카에 담아 팔았다. 시장통에서 자란 나는 시장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욕을 했다. 남에 장사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귀에 담기 싫은 욕을 계속 들으면서도, 아버지는 묵묵히 옷을 파셨다. 나는 말 없이 그냥 아버지를 따라갔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트럭에 앉아 창밖에 날리는 눈발을 보며, 한 가지만 약속했다. 내 머리가 돌대가리라도.. 최소한 부모님께 부끄럽게 공부하진 말자..
그리고 나는 임용에 합격했다. 수석 졸업을 했다. 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다. 그냥 도서관에 살았다. 도서관에 살다보니, 간절함을 가지다보니, 운 좋게 좀 더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수석졸업을 했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1천만원의 학자금 대출이었다.
결혼을 할 때도.. 원룸에서 시작.. 투룸전세.. 시골 24평 아파트를 대출을 받아 샀다. 결혼 직후 딱 한 번, 집사람과 돈 문제로 다툰적이 있다. 내가 경제관념이 많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고맙게도 집사람은 우리 집안 사정.. 내 이야기를 듣고 다음부터는 크게 돈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아주었다.
어린시절 어렵게 지내다보니.. 나는 두 아이를 좀 더 좋은 환경에 키우고 싶다. 도서관이 가깝고.. 학교도 가깝고.. 문화시설이나.... 이런곳... 집사람이 휴직을 하다보니.. 외벌이론 택도 없다. 그냥 꿈만 꿀 뿐이다... 딱 7천만원만 있었으면.... 7천만원은 누구에게는 큰 돈이고, 누구에게는 별로 크지 않은 돈이다..
지금의 나에게 7천만원은 아쉬움이다. 이사를 딱 가고 싶은 곳과 지금과의 차이가 바로 7천만원이다. 더 이상의 대출은 무리다. 나도 알고 있다. 왠지 세상 서럽고, 짜증이 난다. 정말 대학교때 열심히 했다. 학기 중엔 도서관에 살았고.. 나에겐 츄리닝 두벌과 삼디다스 슬리퍼가 다였다. 방학 중엔 찜통 더위에 아스팔트 위에서 전신주를 심었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걸까? 나는 욕심쟁이인가? 한 편으로, 부모 잘 만난 친구들은 대학교 등록금이며, 합격 후에 자동차.. .. 노트북까지 사주었다.... 특히 자괴감을 느낀 것은.. 결혼 할 때.. 아파트를 사주시거나, 아파트 자금을 주시는 친구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 였다. 어린 시절처럼 부모님을 원망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
그냥..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 보였다. 원래 그런걸 어떻게 하겠나.. 돈 있다고 행복한 거 아니야! 라는 말은 듣기 싫다. 그렇다고 돈 없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최소한의 출발선은 맞춰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우리 부모님은 열심히 살았는데... 노후가 보장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부모님의 노후를 편안하게 마련할 만큼의 여유가 있지 않은것일까? 나와 우리 부모님의 노력이 부족해서 일까? 부모님과 내가 경제적인 공부를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입에 풀칠하기 바쁜 노동자들은 책 읽을 시간도 부족했다.
부자들이 부동산으로 부를 되물림할 때, 나와 같은 흙수저들은 가난을 되물림하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 아닌가? 그것을 극복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그것이 핑계라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아직도 그렇게 38년을 반지하에서 일하신다. 나의 이 글은 이유도, 핑계도 아니다. 그저 한탄이다. 욕심이라면 욕심이다. 그저, 부모님들께서 이제는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지내시면 좋겠다. 남은 여생이라도 아픈 곳 없이, 먼지 가득한 반지하에서 미싱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못난 아들이 부모님께 여유있는 생계는 보장해 드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제는 좀.. 편안하게 쉬면서도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