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슈마엘(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추방자의 이름). 뭐 어차피 정확한 햇수 같은 건 상관 없겠다만 벌써 몇 해 전 일인데 말이다. 수중에는 돈 한 푼 없고, 딱히 재미있는 일도 없었으므로 잠시 배라도 타고 바다 구경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우울증을 치우고 혈액 순환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입 언저리에 주름이 잡힐 때, 마음 속에 구질구질한 비가 내릴 때, 절로 장의사를 찾아뵙게 되거나 우연히 만난 장례 행렬을 따라가는 나를 발견할 때, 인생이 재미 대가리도 없는터라 길 가는 아무 사람 모자라도 벗겨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도덕적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때. 바로 이 때야말로 바다로 나가야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권총을 입에 무는 것의 대용물인 셈이다. 로마의 자살자 카도는 뒈지기 전 철학적 미사여구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입 다물고 배를 탄다.
(중략)
"나는 태양에 등을 돌린다. 두려운가? 테슈테고, 네 놈의 망치 소리를 들려다오. 자 이제 모두 죽는 것이다. 외로운 생애의 최후란 원래 이런 것이지. 드디어 알겠군. 가장 위대한 것은 가장 슬픈 일 속에 있다는 것을. 이 멍청한 고래 녀석아! 네가 날 부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굴복은 시킬 수 없어. 나는 이 파도를 타고 너를 습격해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네 놈을 찌르고 마지막 숨을 네게 뱉겠다. 이 저주 받은 고래 녀석아! 니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 널 따라가주마! 자아 받아라!"
에이허브는 증오에 가득 차 힘껏 작살을 던졌다. 작살에 찔린 흰 고래는 분수 같이 피를 쏟으며 쏜살같이 도망갔다. 그와 동시에 풀려나간 고래 밧줄이 에이허브의 목에 감겼다. 그것은 마치 침묵 속에 교수형을 집행하는 터키의 벙어리 형리의 솜씨처럼 훌륭했고 에이허브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다로 끌려가고 말았다. 에이허브 선장은 금세 이승에서는 영영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백경 中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