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목요일이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 마실 술을 사야 할 목요일이다.
싱글 몰트 위스키가 대세다. 나도 싱글 몰트 좋아한다. 나는 블렌디드 위스키 또한 좋아한다.
블렌디드라니, 꼰대라고? 흥.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 나쁜 위스키는 없다고. 더 좋은 위스키가 있을 뿐이라고.
또 다른 술꾼은 이런 비유를 하시었다. “싱글 몰트는 솔로 연주와 같다. 소프라노 혼자 부르는 노래. 블렌디드 위스키는 오케스트라다. 하모니”
그러므로 편견을 버리고 마시자, 술을. 블렌디드 위스키를.
오늘의 술은 발렌타인 21이다. 아, 발렌타인. 얼마나 설레는 이름인가. 이름만 들어도 좋다. 발렌타인하면, 나는 부귀영화와 같은 이미지를 연상하고 만다. 아마 발렌타인 30 때문일 것이다.
발렌타인 30을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술잘알 중에 술잘알 님의 말씀이 위로가 된다. 가사라대 “발렌타인 중에는 21을 제일 좋아해요. 30은 너무 개성이 강하달까. 보통 고연산 위스키로 가면 자기 주장이 세지죠.”
아멘.
발렌타인 21 병의 만듦새는 조금 실망스럽다. 디자인이야 뭐 무난하다 쳐도 플라스틱 스크류캡으로 막은 뚜껑은 아쉽다. 코르크를 썼으면 딸 때 퐁, 기분 좋은 소리가 났을 텐데. 그 또한 술 마심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맛이 좋으니 용서가 된다. 발렌타인 21은 아주 밝은 색을 띈다. 발렌타인 21을 따른 잔에서는 은은하고 온화한 향이 난다. 기품있는 달콤함이다. 잔을 돌리면서 향을 깨우고 후각 세포를 풀가동한다. 사과향과 꽃향을 느낀다.
술이 혀에 닿는다. 놀랍다. 너무 부드럽다. 발렌타인 12는 우유에 가까운 질감이었다.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리미했다. 21은 우유보다는 물에 가까운 부드러움이다. 비단처럼, 혀에서 술이 미끄러진다.
발렌타인 21은 목구멍의 초입에서 슬슬 실력을 발휘한다. 목젖을 앞두고 술이 확 피어오른다. 견과류의 고소함, 벌꿀의 달콤함, 약간의 짭조름함, 매운맛이 난다. 컨디션에 따라 벌꿀이 아니라 초콜릿의 단맛이 나기도 한다. 스파이시한 피니시가 오래 간다.
발렌타인 21 온더록스는 별로일 거라 생각했다. 보통 얼음에 위스키를 따르면 온도가 낮아지면서 향이 움츠러든다. 게다가 술이 희석돼 밍밍해진다. 발렌타인 21은 워낙 부드러운 위스키라 온더록스에서 맥을 못 출 것 같았다.
아니다. 발렌타인 21은 온더록스에서도 준수하다. 여전히 부드럽다. 생강의 풍미가 올라온다. 스트레이트에서는 숨어 있던 맛이다. 오히려 스트레이트보다 크리미하다. 그리고 달콤하다. 스트레이트가 다크 초콜릿이라면 온더록스는 밀크 초콜릿이다. 피니시는 조금 약하다.
좋은 술이다.
알코올도수 40도. 국내 주류 전문점 등에서는 700㎖ 한 병에 약 25만원. 면세점에서는 100달러 조금 넘는 가격에 판다.
면세점에서 다시 살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