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목요일이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 마실 술을 사야 할 목요일이다.
한 잔에 1억원짜리 술을 마신다고 한들 눈앞에 꽃밭이 펼쳐질 리는 없다. 그렇지만 눈이 번쩍 뜨일만큼 맛있는 술은 분명히 있다.
트라피스트 맥주 ‘로슈포르’ 삼형제가 바로 그런 술이다. 트라피스트 맥주란 수도원에서 만든 맥주다. 로슈포르를 마시면서 수도승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평생 로슈포르를 마실 수 있겠지. 주여 아멘.
아니다. 세상에는 내가 아직 못 먹어본 술이 이렇게 많은데. 수도원에 처박혀 로슈포르만 마실 수는 없지. 신에게는 아직 백만스물한 가지의 술이 남아있사옵니다. 주여 아멘.
술을 빚는 수도원들이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까지 조직해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던가. 또 진짜 트라피스트 맥주는 단 11종뿐이라던가. 로슈포르는 1595년부터 만든, 트라피스트 맥주 중에서도 제일 오래된 술이라던가.
로슈포르는 로슈포르6, 로슈포르8, 로슈포르10 등 총 세 종류가 있다. 뒤에 붙은 숫자는 각각 양조 시점으로부터 맛볼 수 있는 주를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순서대로 양조 6주, 8주, 10주 후에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원료는 다 똑같다. 맥아, 호프, 효모, 옥수수, 설탕 그리고 수도원 지하수로 빚는다.
알면 좋지만, 몰라도 좋다.
마시자. 아, 주둥이가 넓은 잔에 따라 마시자. 그래야 그 향을 오롯이 느낄 수 있으니까.
로슈포르6은 불투명한 옅은 갈색이다. 6보다는 8이, 8보다는 10이 더 진한 갈색이다. 6의 거품은 성글다. 금세 사라진다. 잔에 코를 가져다 대니 희미한 견과류 냄새가 난다. 화사하고 신선하다.
술을 한 모금 머금는다. 입안에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풍미가 작은 회오리를 만든다. 달콤하고 진득하다. 들어가지도 않은 코리앤더가 느껴진다. 삼키면 짠, 쌉싸름한 계피, 달콤한 캐러멜이 등장한다. 마신 뒤에는 입안에 새콤달콤한 포도, 고소한 보리가 남는다. 각각의 풍미가 진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다. 바디감은 가벼운 편이다.
알코올 도수는 7.4도. 330㎖ 한 병에 약 7000원.
8을 색도, 향도 알코올 도수도 다 6보다 진하다. 6에 꽃향기를 더하면 이런 냄새가 날까. 향기롭다. 바디감, 탄산의 정도는 비슷하다. 전반적으로 더 시큼하고 더 쌉싸름하다. 코리앤더의 풍미는 여전하다. 피니시에서 은은했던 캐러멜이 8에서는 노골적으로 다가온다. 좋은 맛이 오래 남는다.
알코올 도수는 9.2% 330㎖ 한 병에 약 8000원.
10은 거의 검정에 가까운 갈색이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향이 거의 안 난다. 거품은 셋 중 가장 빨리 사라진다. 냄새도 안 나고 거품은 빨리 꺼지고 조금 실망스럽다.
술을 마신다. 실망이 환희로 바뀐다. 6과의 풍미는 하늘과 땅 차이다. 8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깊다. 술인데 진득한 에스프레소이며, 달콤쌉싸름한 다크초콜릿이다. 바디는 묵직하다. 피시니에 약간의 꽃향기가 숨어 있다. 잔향도 제일 오래간다. 행복하다.
알코올 도수 11.3도. 330㎖ 한 병에 약 9000원.
*출처 : 위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