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이 우리 집에서 창궐했다. B형 독감이었다. 한낱 독감이 한낱 독감이 아니었다. 독감이 이렇게 무섭다는 사실을 전에는 미처 몰랐다.
아내는 오한과 근육통으로 몸져누웠다. 기침은 아내의 가슴 깊은 곳에서 터지듯 나왔다. 기침 소리가 낮고 거셌다. 아들들은 똥을 지렸다. 체온이 40도를 넘나들었다.
나만 혼자 멀쩡했다. 나라도 괜찮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묘한 소외감이 교차했다. 독감 바이러스마저 ‘아비야 너는 나가 돈을 벌어 오거라’라고 말하는 것인가.
처음에는 그냥 감기인 줄 알았다. 주말이어서, 문을 연 아무 병원에 그냥 갔다. 아내는 B형 독감 판정을 받았다. 엄마가 B형 독감이면 모유를 먹는 둘째는 필연적으로 B형 독감일 것이었다.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첫째도 B형 독감이 확실했다.
B형 독감은 보통의 감기약으로는 낫지 않는다. 타미플루를 먹어야 한다. 아내는 약의 독성이 모유에 녹아 둘째의 몸에 흘러 들어갈까 봐 타미플루를 먹지 않았다. 타이레놀만 먹었다. 의사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의사가 뭘 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첫날, 의사는 B형 독감은 발열 12시간 이후로 확진 가능하다고 했다. 첫째와 둘째 모두 미열이 있었으나, 병원에 갔을 당시에는 발열 12시간이 안 된 시점이었다. 일단 집에 돌아갔다.
첫째의 상태는 비교적 괜찮았다. B형 독감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었었다. 생후 150일이 안 된 둘째의 몸에서 열이 계속 났다. 자꾸 설사했다. 이날 저녁에 둘째만 데리고 응급실에 갔다. 나쁜 예감은 좀처럼 틀리지 않는다. B형 독감이었다. 의사가 타미플루를 처방했다. 탈진을 예방하려고 수액을 놓았다. 찹쌀떡 같은 발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둘째 날, 첫째의 체온이 39도를 넘었다. 눈이 풀렸다. 그래도 까르르 웃으면서 뛰어다녔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뛰다가 자꾸 넘어졌다. “아들 이리 와” 불러서 안아보면 숫제 불덩이였다. 역시 B형 독감이었다. 타미플루를 먹였다. 그래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응급실에 가봤자 별 수가 없다. 나는 이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첫째를 홀딱 벗겨 욕조에 넣었다.
첫째 B형 독감 판정은 원래 다니던 소아과에서 받았다. 이 병원의 의사는 대한모유수유의사회(이런 게 진짜로 있다!) 임원이다. 의사가 말했다. “수유부가 먹을 수 있는 감기약이 있다. 타미플루는 비교적 임신부·수유부에게 안전한 약이다. 수유 중에 먹어도 된다. 수유부가 타미플루 먹으면 안 된다고 한 병원이 어디냐. B형 독감을 방치하면 폐렴이 될 수도 있다. 여러 위험을 고려하면 타미플루를 먹는 게 낫다.”
아내와 아들들은 닷새쯤 약을 먹으면서 독감과 싸웠다. 아내의 기침은 거의 멎었다. 두 아들의 체온은 정상이다. 아직 조금 콜록거리고, 콧물을 줄줄 흘리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