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이 엄습할 때 나는 트와이스의 샤샤샤를 듣는다. 약간 치어업이 된다. 작심하고 비탄에 빠지고 싶어지면 하이페츠가 연주한 비탈리의 샤콘을 튼다. 우주처럼 외로울 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좋다. 또 마일스 데이비스 아, 혼자 위스키를 마실 때 마일스 만한 음악은 없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첫 음악 포스팅은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이어야만 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음악이 아니었다. 이런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진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스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전축 앞에서 배를 깔고 '재즈의 역사' 비슷한 제목의 책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턴테이블을 켜고 LP를 올리셨다. 그때까지 턴테이블을 켤 일은 거의 없었다. 내 재즈 음반은 다 CD였고 그때 나는 전축을 점령한 채 종일 재즈만 들었기 때문이다.
틱틱 LP의 잡음이 흐려지자 현악기가 울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했다. 이윽고 금관악기가 폭발했다. 금빛 광선이 구름을 뚫고 쏟아졌다. 팀파니의 우레가 저항했지만, 소용 없었다. 암흑이 걷히고 광명이 밝았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눈앞에 펼쳐졌다. 소름이 돋았다. 2악장까지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3악장 아다지오에서 조금 숨을 돌렸다. 합창 3악장의 아름다움을 알기에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저 위대한 4악장이 시작됐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도 알 만한 멜로디였다. 성탄절을 즈음해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멜로디가,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찬송가가 사실은 베토벤 합창 4악장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4악장에서부터 성악진이 가세한다. 바리톤이 '오 친구여, 이런 소리가 아니다. 더 즐겁고 희망찬 노래를 부르자'며 노래를 시작한다. 가사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베토벤이 일부 수정했다. 3번째 변주부가 유명하다. 전 성악진이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라고 외친다. 합창에서 가장 눈부신 파트이기도 하다. 종장으로 갈수록 열기가 달아오른다. 오케스트라와 성악진의 환희 속에 곡이 끝난다.
일반적 추천앨범
- 지휘 페렌츠 프리차이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녹음 1957년
애호가들이 최고의 레퍼런스로 꼽는 음반이다. 프리차이의 합창은 과한 부분도, 모자란 부분도 없다. 모든 것이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가히 천의무봉이다. 50년대 후반에 녹음되었으나, 음질이 훌륭하다. 감상에 전혀 지장이 없다. 밸런스가 잘 맞는다. 이 곡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 애호앨범
지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녹음 1942년
광포한 합창이다. 보통 합창 교향곡은 '암흑에서 광명으로'로 전개한다. 푸르트뱅글러는 암흑에서 더 깊은 암흑으로 치닫는다.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4악장 끄트머리에서의 질주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이 앨범은 호불호가 엇갈린다. 좋아하는 사람은 열광하며, 싫어하는 사람은 '이것은 베토벤이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황 녹음한 앨범이다. 전시의 어두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녹음 상태는 좋지 않다.지휘 헤르베르트 본 카라얀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녹음 1983년
거장의 마지막 합창이다. 카라얀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와 성악진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80년대 베를린필의 연주의 탁월함은 말할 것도 없다. 폭발적이다. 1960년대에 녹음한 카라얀의 베토벤 9번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80년대에 비해 차분하고 냉정하다. 1976년 녹음은 혹평이 많다. 건조한 녹음이 몰입을 방해한다. 70년대 녹음은 내 합창 첫 경험이기도 하다.지휘 세르쥬 첼리비다케 연주 뮌헨 필하모닉 녹음 1989년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 연주다. 첼리비다케는 지독하게 느리게 연주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는 느린 템포가 음악의 본질을 드러나게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나마 합창은 첼리비다케 기준에서 빠르게 연주하는 편이지만, 다른 연주에 비하면 여전히 느리다. 이것이 첼리비다케의 마법이다. 그는 느린
템포 속에서 에너지를 응축하고 또 응축한다. 클라이맥스에서 그 억눌린 힘을 쾅, 터뜨려버린다. 그때의 카타르시스는 어마어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