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목요일이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 마실 술을 사야 할 목요일이다.
수입맥주 4캔에 1만원 시대, 당신은 한 잔의 맥주에 얼마까지 낼 용의가 있는가. 여기 750㎖ 한 병에 무려 3만원짜리 맥주가 있다. 스페인 맥주 ‘에스텔라 담 이네딧’이다.
‘치킨에는 맥주’라는 공식에 도전하는 맥주다. 이네딧은 본격 정찬(正餐)용 맥주를 표방한다. 제대로 된 식사에 어울리는 맥주라는 고급스러운 목표를 달성하려면 가격까지 고급스러워야 했던 것일까.
스페인 맥주회사 에스텔라 담이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스페인 레스토랑 ‘엘불리’의 셰프, 페란 아드리아와 손잡고 만들었다. 아주 유명한 레스토랑이자, 유명한 셰프라고 한다.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네딧은 와인병처럼 생긴 길쭉한 유리병에 들어있다. 짙은 갈색병 하단에 황금색 별을 박았다. 750㎖ 한 병을 사면 와인잔을 닮은 전용 잔을 한 개 준다.
친절하게도 200㎖ 지점에 선을 그어놓았다. 200㎖씩 따라 마셔야 가장 맛있다나 뭐라나. 유려한 병, 미끈한 잔이 주는 시각적 쾌감에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맛, 맛을 보자. 이네딧은 싱그러운 술이다. 레몬과 귤향이 상큼하다. 은은한 꽃향기가 감돈다. 살짝 단맛이 난다. 쓴맛은 전혀 나지 않는다.
고수와 비타민C를 넣어 맛을 냈다. 고수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마시기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보디감은 가볍다.
라거와 밀맥주를 블렌딩 해 최적의 맛을 찾았다고, 에스텔라 담은 주장한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전체적으로 밀맥주의 느낌이 강하다.
제법 탄산이 강하다. 탄산의 지속력도 좋다. 한 잔을 꽤 천천히 비울 때까지 기포가 살아있다. 청량하다. 샴페인 대용으로도 괜찮을 듯하다.
이네딧에서 깊은 맛, 흐드러지는 향, 멋진 풍미 같은 것을 찾을 수는 없다. 이네딧은 어디까지나 음식 본연의 맛을 살려주는, 주연을 빛나게 하는 조연이다.
다시, 가격으로 돌아간다. 조연인 맥주 한 병에 3만원은 가당한 가격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찬에 곁들이려면 처라리 와인이 낫다. 이 가격이면 썩 훌륭한 와인을 먹을 수 있다.
맥주를 마신대도 마찬가지다. 3만원은 수입 맥주 12캔을 마실 수 있는 돈이자, 병당 1만원 선인 고급 수제 맥주를 3병 마실 수 있는 돈이다. 이네딧 한 병이 주는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시 사 마시지 않을 것이다. 스페인에서 이네딧은 훨씬 싸다고 한다. 얼마일지 모르겠지만, 750㎖ 한 병에 1만원쯤 하면 마실 의향이 있다. 수입사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