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6시 30분쯤 우리 건물 504호에서 불이 났다. 우리 집은 304호다. 소방관들이 불길을 잡아서 불은 더 번지지 않았다. 불은 504호만 태우고 사그라졌다. 504호는 다 타버렸다. 소방차 13대가 출동했다.
불길은 잡았지만, 유독가스는 다 잡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오후 10시 30분쯤 건물 복도에 들어섰다. 공기가 매캐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마른기침이 나왔다. 우리 집 안에서도 탄내가 났다.
504호에 사는 남자의 담배꽁초가 발화 원인이라고 이웃이 말했다. 나는 504호를 두들겨 패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살의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평소 오후 6시 30분은 아내와 아들들이 집에 있을 시간이다. 아내 혼자 아들 둘을 데리고 대피하는 모습이, 서두르다가 누구 하나 다치는 모습이 자꾸 그려졌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아들들은 유독가스에 노출됐을 것이다. 둘째는 생후 6개월이다. 폐가 안 좋다.
화재 당시 아내와 아들들은 집에 없었다. 우리는 이날 모처럼 외식을 했다. 소방차가 504호에 물대포를 쏠 때 우리는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서울 파이낸스센터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이웃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504호는 불씨가 살아있는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버렸다. 꽁초 속 불씨는 휴지통 속 쓰레기에 옮겨붙었다. 불꽃은 휴지통을 비집고 나와 집안 곳곳으로 확산했다.
역시 전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발화 당시 504호는 자고 있었다. 행인이 불이 난 사실을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504호는 이상한 냄새에 잠에서 깼다. 거실로 나가 불이 난 사실을 확인하고 “불이야”를 외치면서 집에서 빠져나왔다. 이웃들은 애완견을 안거나, 츄리닝을 입거나, 슬리퍼를 신은 채 대피했다. 사상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