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일찌감치 깨달아 알고 있었다. 깨달았으나, 닥칠 때마다 당혹스럽고 짜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우리 건물에 불이 난 날(https://steemit.com/kr/@afinesword/6nrosr) 그러니까 지난 8일 모든 것이 나의 계획대로였다면 나는 그날 저녁 새로 산 에어프라이어에 CJ고메치킨을 구워 먹었을 것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내 머리속은 에어프라이어와 고메치킨으로 가득했었다.
나는 1년 365일 다이어트를 한다. 몇 날은 성공하고, 대개 실패한다. 실패의 주원인은 치킨이다. 사실은 술 때문임. 치킨집 치킨을 끊으려고 에어프라이어를 샀다. 어차피 끊기는 글렀으니까 몸에 덜 나쁘게, 덜 살찌게, 더 싸게 치킨을 먹자는 얄팍한 수였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 난리가 났고 내 시식 일정은 강제 연기됐다.
가족동반 저녁 모임을 하고 집에 왔다. 나흘 만에 귀가다. 홈 스윗 홈. 개똥밭에 굴러도 내 집이 좋다.
집에 오자마자 에어프라이어 포장을 뜯고 설거지를 했다. 아내는 "배 안 불러?"라며 혀를 찼다. 그의 눈빛은 "다이어트 한다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애써 못 본 체하고 에어프라이어를 돌렸다. 190도로 예열, 8분의 조리가 끝났다.
먹었다. 결론은 핵실망.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기름지고 눅지고 짜다. 소주를 부르는 맛임. 진정 냉동치킨으로 배달치킨 맛을 낼 수는 없는 것이라는 말인가.
알코올 도수 45도짜리 조옥화 안동소주를 꺼내 마셨다. 소주를 넘기니 좀 먹을 만했다. 조옥화 옹이 빚은 이 안동소주는 대단한 물건이다. 언젠가 술스팀으로 다룰 생각이다.
그래도 즐거웠다. 모처럼 인생이 내 계획을 허락한 시간이었다. 카르페 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