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은 “나는 스스로 개혁 군주라고 한 적 없다. 나는 사우디의 왕세자다”라고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서방 언론은, 그리고 서방 언론을 레퍼런스로 삼는 국내 언론은 빈살만 왕세자의 파격적인 행보에서 개혁가의 면모를 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세계 제1의 산유국 사우디를 탈석유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그것이 그가 추진한 초대형 프로젝트 ‘비전 2030’의 골자다.
빈살만 왕세자는 또 사우디 여성의 운전,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허용했다.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별것이 아닌 일이지만, 지독한 원리주의 이슬람 수니파 국가 사우디에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지켜야 할 때, 그는 늘 냉혹했다. 그의 태생이 그러했다. 빈살만은 2017년 6월 왕위 계승 서열 1위 사촌형 모하마드 빈나예프 알사우드를 밀어내고 왕세자가 됐다.
지난해 11월에는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명목으로 왕족을 포함해 수백명의 정·재계 인사들을 구금했다. 사실상의 숙청 작업이었다. 구금된 인사들은 충성을 서약하고 거금의 벌금을 내고서야 풀려났다.
빈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개혁개방 정책에 반기를 든 이슬람 고위 성직자들을 체포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사우디 검찰은 현재 체포한 성직자에게 사형 구형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자신감에 비례해 냉혹함도 더해지는 모양이다. 빈살만 왕세자를 비판해 온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기가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실종됐다.
실종 당일 그는 이혼서류를 받으러 총영사관에 들어갔다. 그가 건물에 들어가는 영상은 있는데, 나오는 영상은 없다. 실종 나흘째, 외신은 터키 정부를 인용 “카쇼기가 살해당했다”고 보도했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터키 정부는 카쇼기가 사우디 왕실 최고위층의 지시로 살해당했다고 결론내렸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그는 건물에 들어간 지 2시간 만에 죽었다.
암살조 15명이 전세기로 이스탄불에 왔으며, 이중 1명은 시신 해부 전문가였다. 터키 보안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 정도 작전은 오직 사우디 최고위급 지도자만 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빈살만 왕세자의 소행이라는 얘기다. 카쇼기가 무슨짓을 저질렀기에, 타국의 영사관에서 언론인을 살해하는 무리수를 던진 것일까.
카쇼기는 카타르 단교, 예맨 내전 개입, 대이란 정책 등 빈살만표 정책을 비난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으로 피신해 워싱턴포스트에 빈살만 왕세자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이것이 죽을죄인가.
빈살만 왕세자는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카쇼기는 총영사관을 방문한 당일 한 시간 안에 건물에서 나왔다. 카쇼기는 총영사관 건물에 없다. 카쇼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밝혔다.
그러나 리나 카팁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책임자는 “반대파를 잔인하게 응징하는 빈살만 왕세자의 패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사라 레아 윗슨 휴먼라이트워치 중동 담당 이사는 “빈살만 왕세자의 억압이 더 심해졌다는 증거다. 만약 카쇼기가 안전하게 총영사관을 떠났다면 사우디 정부가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말한 것처럼, 애초에 개혁가 빈살만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저 저유가였던 당시 출구전략으로 탈석유, 젊은 층의 환심을 사려고 여성 친화적 정책을 내건 것일지도 모른다.
서방 언론과 서방 언론을 레퍼런스로 삼는 국내 언론이 ‘프린스 차밍’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매력적인 미소를 띤 가면 아래 무표정한 얼굴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