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칭 자발적 (정서적) 1인 가구이다.
오늘부터 며칠간의 명절 연휴가 주어졌다.
새해를 맞이하고 기리는 설과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축제가 곁들여 말이다.
운동에 관심이 높아진 요즘, 한해의 시작이라는 어떤 자극은 잠시 둔감해지고
올림픽에 대하여, 스포츠 정신에 대하여, 집단과 개체에 대하여
그 어떤 '지향점'과 혹은 거기서 묻어나는 '번지르르 함'에 대하여
생각과 고민에 빠지던 차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설이 되면 가깝고, 먼 가족들과 한 데 모여
엄마가 밤 잠 줄여 만드신 따뜻한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가물가물한 세배하는 방법을 다시 떠올려 동생과 몰래 리허설을.
기대하고 한 세배는 아니지만 왜인지 주시는 용돈에 천천히 내미는 손이 부끄러웠고,
한동안은 부자가 된 기분에 적어둔 일종의 버킷리스트를 닳도록 꺼내보았다.
과일을 삭삭 깎아 먹고 배가 불러오면
일동 - 티브이 앞으로, 둥글게 둥글게.
나의 명절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우고, 책에서 읽은 것과는 조금 달랐다.
명절이란 말에서 묻어나야 할 것만 같은 핏줄로 이어진 찐한 정겨움과
그것에서 느낄 수 있는 벅찬 감정을 이야기할 수 없어서
나의 명절은 어디에 기록하기엔 조금 '안타까운 서사'가 돼 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 서사를 이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선 내가 조금 기뻐해도 좋을까?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와 그 뜻을 기리고 행동으로 실천되어 왔지만
요즘 사람들이 '설'을 쇠는 방식과 모습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짧은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어김없이 도서관에 출석 체크하기도 하고,
없는 이유를 만들어 혼자 집에 콕 있기도 하고,
하던 알바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속해야 하기도 하며,
'모두 필.참!'에 따라 긴 시간 도로 위를 침묵으로 내달리기도.
"죄송하지만 저는 가고 '싶지' 않아요..."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가야 하는 곳을 가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연휴가 즐거운 내게
누군가 '연휴에 놀러 가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되묻고 싶다.
연휴에 '누구랑?'
나는 자칭 자발적 (정서적) 1인 가구이다.
무릇 결속력이 강한 가족이라면 구성원 모두와 그 어떤 '뜻'이 맞아야만 한다.
그 뜻이 맞는다면 그 얼마나 행운이고 축복일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역할, 할머니는 할머니의 역할, 외숙모는 외숙모의 역할, 셋 째 이모는 셋 째 이모의 역할, 친척 언니는 친척 언니의 역할, 엄마는 엄마의 역할, 아빠는 아빠의 역할, 오빠는 오빠의 역할, 동생은 동생의 역할...나는 내가 아닌 그 '무엇'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하여 서로 그 '뜻'이 맞는다면 얼마나 행운이고 축복일까!
나는 자칭 자발적 (정서적) 1인 가구이다.
나를 그렇게 부름과 동시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살아가는 이들이 머릿속을 휘감는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그 어떤 선택지조차 없는 삶의 차이는 큰 것 같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가슴이 조금 저릿해오는 건 타인에 대한 오만일까... 동정이 될 순 없는 걸까.
내가 바라는 것이 생겼다면, 그다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한다.
모두가 자신의 상황에서, 모두가 마음 따뜻한 연휴가 되었으면 정말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