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상
저 어릴적에는 개근상이라는것이 참 중요했습니다. 감기가 걸리고 열이 펄펄 나도, 엄마 손에 이끌려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 가서 양호실에 누워있다가 오더라도, 학교는 꼭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한번은 억지로 학교에가서 밥을먹다가 토한적도 있습니다. 많이 울었죠. 그렇게 저는 6년 개근을 하고 개근상이라는 작은 종이를 받았습니다.
고등학생때, 심각한 몸살로 너무 아파서 선생님에게 조퇴를 할수있는지 물어보다가 한대 맞았습니다. 최대한 용기를 내어 강력히 투쟁하여 얻은 결과는 "담임이 허락했다고 하고, 수업중에 엎어져 있어라" 였습니다.
결국 저는 초.중.고 12년 개근을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데 말입니다. 부모님은 개근상을 자랑스러워 하셨지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개근상이라는 종이쪼가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참아야 한다
직장다니던 시절, 심한 몸살로 끙끙 앓다가 한숨도 자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일찍 팀장한테 연락해서 월차 쓰고 쉬겠다고 했더니 하는말. "심각하지 않으면 일단 와서 병가 내고 가세요" 좋게 좋게 계속 말했지만 끝까지 고집을 꺽지 않는 팀장이 참 불쌍해서, 택시타고 회사가서 병가 쓰고 집에 온적도 있습니다. (제가 곤조가 좀 있어서..)
회사에서 누가 아파서 일직 집에 간다고 하면 염려해주는 따듯한 말을 해주는사람도 물론 있지만, "좋겠네 나는 밤샐거같은데" "나도 아프고싶다" "내일은 꼭와 일많아" "나도 아픈데.." 이딴소리 하는 인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훈련소에서의 기억도 나네요. 훈련소 입소전에 허리를 다쳐서, 진단서를 끊어서 들어갔습니다. 의사 소견서에 분명히 "디스크 위험이있으니 유격등의 훈련은 다른 훈련으로 대체해야한다" 라고 적혀있었지만, 얄짤없이 전부 훈련받았습니다. 모자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표시 해주는데, 훈련장까지만 가면 열외 해주겠다 말하고는 일단 가면 똑같이 다시키더군요. 정말 허리 끊어지는줄 알았습니다.
아내는 뜻밖의 간병인 모드
저는 영국에 7년 반째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좌골신경통으로 일주일째 제대로 근무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불편하고, 일도 걱정되고, 생활도 걱정됩니다. 방심하다가 이렇게 훅가네요.
사실 최근 몇달간, 출퇴근이 멀어졌다는 이유로 운동과는 담쌓고 살았습니다. 퇴근하고 밥먹으면 9시가 다 되어가니, 헬스장 가는것도 엄두가 나질 않고, 아침에도 이런 저런 핑계로 스트레칭조차 하지 않고 몇달을 지냈네요. 이직하기 전에는 평소에 장거리 러닝을 즐겨하고 웨이트도 어느정도 해왔었는데, 게으름에 한번 빠지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괜찮을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지내다가, 지난주 금요일에 허리 아래부분으로부터 시작된 통증이 오른쪽 다리 전체에 퍼져서 회사를 못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근육경련이라고 다이제팜과 이부프로펜을 함께 섭취하고 푹 쉬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부프로펜에 약간의 알러지가 있어서, 파라세타몰 (타이레놀)로 대체하면서 고통을 계속 견뎠습니다. 제가 아파도 좀 참는 성향인데, 젊었을때는 그게 통했는데 지금은 좀 조심해야했어야 했는데 또 그랬네요.
주말에 별다른 재밌는것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쉬고,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또 너무 아파서 재택근무 했습니다. 화요일 오전에도 도저히 출근하기 어려울것 같아서 재택근무를 했습니다. 영국에 와서 항상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아프다고 회사를 가지 않은적이 거의 없었는데 벌써 며칠째인지..
줘도 못먹는 배려
어제는 좀 눈치보여서 아픈 몸을 억지로 이끌고 회사에 다녀왔습니다. 좀 움직이면 괜찮아질줄 알았는데, 장거리 통근과 오랜 업무때문인지 자기전에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리얼 아프더군요. 매니저한테 병가 내겠다고 하고 메일보내고 오늘 하루 또 쉬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배아플것같아서 먹지 않던 이부프로펜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배가 좀 아프더라도 소염제를 먹는게 훨씬 나을것 같아서 먹고있는데.. 아직은 속은 괜찮네요. 진통도 그다지 되는것 같지는 않은게 문제이긴 합니다.. ㅎㅎ 딱 이틀까지만 복용 해 볼 생각입니다.
영국에서 회사다니면서 정말 좋은것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때 너무나 잘 이해받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때 상사눈치 동료눈치 인사팀 눈치 봐야 했던 것들이 여기서는 거의 없습니다. "아파도 왠만하면 나와라" "왜 어디가아픈데 못견딜정도야?" "일단은 와서 좀 앉아있다가 가라" 같은 미친소리를 저는 한국에서 실제로 들어봤기 때문에, 이곳에서 몸이 아플때도 최대한 회사에 가서 일해보려고 하는 습성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어떠한 매니저도 또라이가 아니고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영국에선 몸이 안좋으면 반차고 뭐고 쓸것 없이 매니저한테 이야기하고 집에 일직 가서 쉬어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습니다. 아침에 좀 아프면, 아파서 병원갔다가 늦게 가겠다고 하면 그것가지고 눈치볼 일도 없습니다. 오후 3시에 병원 진료가 있어서 2시에 집에간다고 해도 이상한 눈치를 받는일 없습니다.
저도 오늘 아파서 병가내겠다고 메일 보냈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서 나으라고 이야기 해줍니다. 하루 말고 며칠 더쉬는게 낫지 않겠냐고도 물어봐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철저하게 성과로 역량을 판단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임산부라던지, 어린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회사에서 정말 많이 배려해줍니다. 그들이 재택근무라던지 조퇴라던지 늦을 출근을 하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부분은 한국이 어서 따라가야 합니다. 분명히 젊은세대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아주 성숙해 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문화가 변화하는것에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많은 기업들이 변했겠지만, 여전히 "아픈사람 = 구성원에 피해주는 사람" 으로 치부하는 문화가 남아있는 듯 합니다. 모두가 불편한사람과 아픈사람을 배려해주고 이해해줄때 그들도 배려받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것을 알고 있으니 널리 실천되는 날도 오겠지요. 패잔병을 버리고가느냐 부축하고가느냐는 정말 큰 차이지요.
저는 뼈속까지 한국사람이라, 내일도 어느정도 참을만 하면 회사에 갈것 같습니다. 덕분에 또 악화되어 주말내내 요양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거야말로 정말 미련한짓을 하는건데.. 오늘도 쉬는동안 마음이 편하지가 않더라구요.
아플때 당당하게 배려받고 이해받는 문화권에 살아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것이 참 재밌네요.
30년을 참으면서 살았으니 시간이 걸리겠지요.
모두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