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co라는 회사를 아시나요? 얼마전 EEA의 멤버가되어 이더리움 값이 폭등했던 일화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것입니다. (비록 망할 왈렛 해킹사건으로 다시 쭈그러들었지만..) 저는 그 뉴스를 보고 얼마나 반갑던지. 하지만 Cisco가 이더리움 컨소시움에 기대만큼의 호재로 작용할지는 그다지 확신이 없습니다. 물론 가격 상승을 불러올수는 있겠지만, 기술적으로 어떤영향을 줄지는. 그 이야기를 한번 풀어볼게요.
제가 영국에서 처음 취직한 회사는 NDS라는 회사였습니다. 디치털 방송 보안 (CA, Conditional Access)쪽에서 아주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있던 회사지요. 한국의 삼성이나 CJ 다니는 친구들한테, 나 NDS 라는 듣보잡 회사에 취업했다고 연락하니 알고있어서 몹시 놀랐었습니다. 심지어 AltiCast 라는 회사를 다니는 친구는 자기들이 비슷한걸 만든다며 경쟁업체라고 해서 신기했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지사가 있었기때문에 아마도 업계에서는 치열하게 경쟁 했었겠지요? 그렇게 입사후 알게된 회사의 위상에 다시한번 감탄하며, 그동안 한국 내 No 1 customer였던 Korea Telecom이 NDS의 CA에 돈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비슷한 기술을 자체 개발(이라고 쓰고 카피라고 읽는다)한다는 뉴스가 돌때는 팀내에서 조금 부끄럽더군요.
아무튼 저는 이 회사에서 비디오 암호화 관련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각종 방송사에서 송출하는 실시간 영상이나 VOD 영상 데이터를 encryption 하는 고용량 서버였죠. 서버 한대가 초당 4기가씩 처리해야 하는지라 구현부터 테스트까지 정말 힘들었습니다. 텔레콤쪽 일할때는 초당 요청량이 많은 시스템에 학을 뗐었는데, 이건 초당 요청량은 적은데, 요청당 서버가 해야하는 일이 너무 무겁고 많아서 이쪽도 만만치 않게 복잡하고 어려웠습니다.
특히 ABR (Adaptive BitRate) 이라고, 그당시 핫했던 비디오 분산 기술을 새로이 지원하게 되면서 HLS, DASH등의 복잡한 로직들이 사이사이에 접목되며, 제가 구현하던 서버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에 조금씩 지쳐갔고, 이 프로젝트가 더 괴물이 되기전에 이직을 해야겠다 결심했죠. 그게 2012년 이었습니다.
이직준비 시작 전 코에 바람이라도 넣고 새로운 마음을 충전하기위해 휴가를 갔다 왔더니, 전사메일이 와있더군요. "NDS bought by Cisco in $5bn deal". 회사가 시스코에 50억 달러, 대충 6조원에 팔렸다네요. 그리고 저는 졸지에 Cisco 직원이 되어 버렸지요.
Cisco는 보통사람들은 벌레잡는 회사 (세스코) 라고 많이 알고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큰 인터넷/네트워크 회사입니다. 제가 학부시절 모든 네트워크 장비는 시스코것이었고, CCNA CCNP 등의 자격증을 따는게 유행이던 시절도 있었고, 제가 대학원다닐때는 CCNA 기초 강의도 한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CCNA의 자격증도 없으나, 교수님이 시키니까 당일치기로 공부하며 그냥 했었죠. 그래서 저에게는 Cisco라는 회사가 엄청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당장 퇴사하려고 벼르고있던 회사가 Cisco에 팔린겁니다.
네.. 저는 마음을 고쳐먹고 그후로 3년을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왠지 내가 실력으로는 들어올수 없는 회사를 들어온것 같아서, 여기에 뼈를 묻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정말 매일매일 했었지요. 모든 일에 왠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막 나서고 그랬었네요. 출장을 가면, NDS에서 왔습니다랑 Cisco에서 왔습니다랑 정말 천차만별이더라구요. 그런거에 뿌듯해서 한참 즐거웠네요. 근데 겉은 바뀌었지만 실제로 하는일은 거의 비슷했고, 더 큰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나 개인의 역량은 점점 제한되고, 기술하나 선택하는데 두단계 위의 아키텍트선까지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하는 등, Cisco의 기업문화는 내가 듣던 실리콘벨리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상하 계층 구조가 엄청 깊고 (제기억에는 사장부터 말단까지 거의 14 레벨?) 업무 체계도 굉장히 구식이었습니다.
사실 시스코 내에 new initiative 팀도 많이 있고, 내부적인 오픈소스 (인트라넷 GitLab)등에서 적지않은 활동이 있고, 그것들을 장려하는 문화이긴 한데, 문제는 허울에 비해서 실제로 이뤄지는 성과가 별로 없고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기업문화 자체가 폐쇄적이라는 것입니다. 뭔가 쿨한 기업인것처럼 계속 노력하고는 있는데, 그게 쉽게 바뀔것 같지가 않더군요. 한번은 제가 개인적으로 만든 라이브라리를 프로젝트에 쓰게 되었는데, 깃헙을통해 오픈소스에 공개하고싶었으나 회사의 방침상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포기한적도 있습니다. 정말 아주 간단한 라이브러리였는데도요. 또한번은, 우리가 사용하는 오픈소스 코드에 버그가 있어서 수정을 했는데, 그 버그 픽스를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컨트리뷰션 하는것 조차 회사의 반대때문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4년전이었나,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수도 있겠죠. ^^ 과연 Cisco의 참여가 이더리움 기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지만, 그 폐쇄성이 아직도 그대로라면 큰 기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자금과 비지니스측면으로 이끌어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점점 회사내에서 나의 존재가 무력해지는 느낌이 쌓여갈 무렵, 2015년 Cisco를 퇴사했습니다. 그리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습니다. 아마도 제 인생 손에 꼽는 정말 잘한 선택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한달후면 이 스타트업회사를 떠나지만, 아마존 오퍼를 받았을때 옮길것인지 계속 일할것인지 진심으로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고민했을 정도로 너무 좋은 회사입니다. 이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도 나중에 조금 적어볼게요. 오늘은 여기까지 적으렵니다. 모두 좋은 여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