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야기를 통해 삶의 템포를 잠깐 늦춰보는 '저속한 과학'
앞 시간에는 별 이야기를 해봤으니 오늘부터는 혜성과 행성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스팀 헌정 과학 이야기이기도 합니다.ㅎㅎ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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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comet 은 아주 매력적인 천체입니다. 특히 그 꼬리가 아주 매력적이죠. 전설 속의 구미호처럼 사람을 홀린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혜성이 나타난다고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혜성을 보기위해 옥상에 올라가거나 아예 좋은 관측지를 찾아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1910년엔 달랐습니다. 그 꼬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종말이 온다며 난리가 났었죠.
1910년 핼리혜성 사진
당시 신문(로스앤젤레스 이그재미너Examiner)의 기사 내용들을 보면 아주 가관입니다. ‘혜성이 뿌린 청산가리 맡아 보셨나요? 전 인류 공짜 독가스 목욕을 앞두다. 야단 법석 예상중, 청산가리 맛보았다는 사람 많다.’
근데 혜성이 나타나는데 갑자기 왠 독가스일까요?
당시 과학자들은 혜성에 대해 연구하다가 혜성 꼬리에 ‘시안’이라는 독성물질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시안은 흔히 청산가리라고 알려져있는 화학물질로 0.15g만 먹어도 죽게 되는 독극물이죠. 독살사건에 흔히 쓰이며, 죽지 않을 정도의 극미량을 맛본다면 머리가 망치로 내리쳐지는 느낌과 함께 눈 앞이 캄캄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독극물이 포함되어있는 혜성 꼬리가 워낙 길다는게 문제였죠. 혜성 꼬리는 무려 1억 2000km, 지구 지름의 10배나 됩니다. 그리고 계산에 따르면 1910년 5월 18일 지구는 혜성의 꼬리 부분에 들어가게 되는 상황이었죠. 당시
신문 The times 에서 프랑스의 천문학자 카밀 플라마리옹 Nicolas Camille Flammarion 은 혜성의 시안가스가 지구 대기에 스며들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끝장 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말도 안되는 주장이었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테니까요. The times 에서도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프레마리옹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고, 화성관측으로 유명한 천문자 퍼시벨 로웰 Percival Lawrence Lowell 은 독가스의 밀도가 워낙 희박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겁먹은 사람들은 과학자들의 합리적인 주장에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폭주하기 시작했죠. 캘리포니아의 한 광부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사람들은 독가스가 스며드는 것을 막기위해 열쇠구멍을 막았습니다. 상점의 가스 마스크는 순식간에 동이 났죠. 공포를 이용하려는 사기꾼들도 당연히 나타났습니다. 어떤 사기꾼은 ‘하늘의 분노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영약’이라는 브랜드로 알약을 팔아댔고, 텍사스에서는 설탕으로 만든 알약을 해독제라면서 속여 팔던 사기꾼이 체포됐죠. 그런데 체포된 사기꾼은 곧바로 풀려납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약을 사야하니 풀어달라고 항의를 하는 통에 경찰들이 견딜 수가 없었던 거죠.
웃기죠? 도대체 왜 그러나 싶죠?
그러나 그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까운 사례로는 2012년 중국 종말론 소동이 있죠. 마야달력을 근거로 중국에서 지구종말이 온다는 헛소문이 퍼졌고 사람들은 양초와 식료품을 사재기했습니다. 사기꾼들은 노인들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냈고 어떤 여성은 가족 몰래 수억원을 인출해 학교에 기부하기도 했죠. NASA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아무 근거없는 소리라며 안심하라고 해도 소용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럴까.
분명히 많은 과학자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왜 그 말은 무시해버리고 사기꾼의 감언이설과 잘못된 주장에 쉽게 넘어갔던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뇌의 한 부분인 편도체 Amygdala 를 살펴봐야합니다. 편도체는 뇌 깊숙한 곳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뇌부위인데요. 감정을 조절하고 특히 공포와 관련이 깊습니다.
쥐의 경우 편도체를 파괴하면 고양이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죠. 고양이 앞에서 편안하게 까불다가 아주 쉽게 잡아먹힙니다. 원숭이 역시 편도체가 파괴되면 뱀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구요.
또한 원숭이의 경우 수술을 통해 눈과 편도체가 연결된 신경을 잘라서 한쪽 눈만 편도체와 연결시켰더니 편도체와 연결된 눈으로 보는 사물에서만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어떤 사물을 보든 편도체와 연결되어야만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편도체 때문에 사람의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공포 상황이 펼쳐지면서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사물에 대한 작은 세부정보에는 둔감해지고 사물의 윤곽, 형태 같은 대략적이고 전체적인 정보에 굉장히 민감해진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곰이 나타났다고 했을 때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곰의 눈, 코, 입, 털색깔 같은 세부정보는 무시하고 곰의 형태, 방향, 속도 같은 대략적인 정보에 민감해진다는 겁니다.
그거야 그럴 수 밖에 없겠죠. 곰이 나타났으면 진짜 곰인지 아닌지, 도망을 갈지 안갈지, 어디로 도망갈지를 빨리 결정해야지, 곰의 눈, 코, 입, 털 색깔을 관찰하고 있을 시간은 없으니까요. 물론 인류의 조상 중에는 그런 상황에서도 세부정보를 자세히 보는 그런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고 자손을 남기지도 못했겠죠.
공포상황에서 대략적으로만 정보를 파악하고 빨리 판단, 행동하는 것은 살아남기위해 꼭 필요했던 기능인겁니다. 그런데 바로 이 기능 때문에 종말론 대소동이 일어나게 되죠. 공포상황이 펼쳐지면 자세하게 따져보지 않고 얼른 도망갈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겁니다. 일단 머리 속에 공포가 자리 잡으면 아무리 과학자들이 안심하라고 해도 소용 없는 거죠. 그때부턴 이미 살아남는게 최우선 과제가 되니 지푸라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사기꾼들의 말에 쉽게 넘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왜 혜성을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바로 정보 덕분입니다. 혜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정보가 이미 있으니 공포에 제압 당할 이유가 없고 편도체가 활성화되지 않는 거죠. 아는 것이 힘인 겁니다.
다음 시간엔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 혜성을 직접 방문해보고 탐험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참고자료
혜성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지음 / 김혜원 옮김 (2016 사이언스북스)
코스모스 / 칼 세이건 지음 / 홍승수 옮김 (2006 사이언스북스)
핼리혜성 꼬리 소동
https://namu.wiki/w/%ED%95%BC%EB%A6%AC%20%ED%98%9C%EC%84%B1%20%EA%BC%AC%EB%A6%AC%EC%86%8C%EB%8F%99
http://news.donga.com/more13/3/all/20060518/8308301/1
https://en.wikipedia.org/wiki/Camille_Flammarion#cite_note-5
편도체
https://ko.wikipedia.org/wiki/%ED%8E%B8%EB%8F%84%EC%B2%B4
https://www.claimcare.co.kr/bbs/board.php?bo_table=claim_request&wr_id=7111&pag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