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녕을 기리는 민속놀이
옛날 어린이들은 겨울철이 되면 동네밖
공터에서 너도 나도 연을 띄우며
놀았으니 연날리기는 운동을 겸한 최고의
장난감이었습니다.
여름에는 하지 않았는데 거기엔 나름대로의
뜻이 담겨있다고 하네요! ㅎ
오늘은 점점 잊혀져가는 '연' 이야기입니다.
ㅎㅎ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민속놀이는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있지만 유독 연날리는
것은 누구나 즐겼던 놀이였으니...
남자라면 나이드신 어른이라도 몇날을 계속
하기도 했으며 연싸움이 벌어지는 날은
동네 잔치처럼 모두 나와서 응원을 했답니다.
우리나라 전통 연은 모양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불렸는데..
우선 직사각형의 몸체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있는 방패연, 마름모형에 꼬리가 길게 달린
가오리연이 가장 흔한 형태이지요!
때로는 특별한 의미를 담아 무늬나 동물형태로
만들기도 했으니..
기반연(바둑판 무늬), 묘안연(고양이눈 모양),
작령연(까치날개 모양),어린연(물고기비늘 모양),
용미연(용의 꼬리모양) 등이 있답니다. ㅎ
그렇게 다양한 연 중에서 가장 특별한
연이 있었으니..
바로 정월대보름 바로 전날하는 액막이연입니다. 커다랗게 '액(厄: 사납고 모진 운수)'이나
'송액(送厄)'이라고 쓴 연을 줄에 연결하고 제일
위쪽 연줄에 무명실이나 조그만 숯을 매달아
불을 붙인 다음 날리는 것..
그렇게 하면 연이 하늘에 떴을 때 줄이
끊어지므로 아주 멀리 날아가게 되는데
액이 멀리 사라지면서 요사스런 귀신을
쫒아준다고 믿었답니다.
연은 주로 초겨울부터 시작하여 정월대보름
까지 날리는데 그것은 바로 그 때문으로써
계속해서 하면 멀리 날아간 액이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했답니다. ㅎㅎ
연 날리는 즐거움은 바로 연싸움..
옛날 농가에서는 겨울철이 상대적으로
한가했으므로 마을마다 어른들은 연싸움을
즐겨했는데 종종 상품을 걸고 시합도 했으니
저마다의 방법으로 쉽게 끊어지지
않으면서 상대방 줄을 공격하는 방법을
연구했답니다. ㅎㅎ
무명실보다 질긴 명주실을 사기 위해 저금통을
터는가 하면, 유리나 사금파리가루를 명주실에
입혀 상대방 줄을 쉽게 끊게도 했지요!
그런가 하면 줄을 빨리 감고 풀수 있도록
잘 움직이는 얼레를 며칠씩이나 걸려 만들기도
하고, 연을 잘 다루는 실전 대비훈련으로
배고픈 줄도 몰랐답니다.
역사속에서 연은 유명한 인물
과 관련해 많은 설화를 남기고 있으니..
첫번째로는 삼국사기에 김유신 장군이
이용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선덕여왕 16년에 비담이란 자가 여성 왕을
폐위시키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는데
어느날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하늘의 뜻으로 이제 곧 여왕은 패배할
것이다!"라고 백성들을 현혹했습니다.
그러자 김유신 장군은 연에 불을 붙여 띄우고
"어젯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으니
이제 여왕의 강건함은 더욱 오래갈 것이다!"
라고 민심을 수습했으며 병사의 사기를 높여
반란군을 무찔렀다고 합니다. ㅎㅎ
두번째로는 최영장군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고려말 탐라국을 정벌할 때 해안에 무성한 가시
덤불을 없애기 위해 갈대씨를 담은 주머니를
매단 연을 띄우고 가을에 씨앗이 퍼져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다음 불을 놓아 가시덤불을
쉽게 제거하고 상륙해 탐라국을 정벌했다고
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세종대왕때 남이장군이
강화도에서 연을 날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때 수많은 섬과
연락을 할때 통신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이야기
도 전해져 옵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나라마다 토템신앙이
만연해 하늘의 신(天神)에게 제사를 올렸으니
예의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등이 유명하지요!
그런데 그런 제천의식이 끝나면 춤과 음식을
즐기다가 맨마지막에는 연을 높이 날려보내는
것으로 행사의 끝을 알렸다고도 합니다.
제천의식
(출처)한해의 액을 막아주는 민속놀이,
연날리기,해피도날드
주말은 최대한 달달하게 보내시길 바래요.^^
2019.02.09
비비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