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부터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일찍 퇴근하여 집 근처의 병원에 갔다 왔다.
예상했던 결과가 다가왔다. 의사 선생님께서 일단 경과를 지켜보자고,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다. 이 다시 시작된 간헐적 통증으로 나는 또 예전의 나의 병들이 재발하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통증들은 나에게 애증적 존재이다. 이 온몸의 통증들은 나를 고통 속에 빠트리지만 한편으로는 나로 하여금 "아 나는 아직 살아있구나"를 상기시킨다. 이 간헐적 통증들은 나를 짜증나고 답답하게 만들지만, 이러한 통증이 있기에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ㅋㅋㅋㅋ 모르겠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통증도 혹시 다 시뮬레이션 된 수치일 수도 ㅋㅋㅋㅋ]
내가 항상 추구하고 알고 싶었던 '나의 존재성' 에 대한 생각들이 이러한 '통증'으로 무뎌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떤 면에서 이 '통증' 들은 나의 생각을 면밀하게 만들기도 하고 무뎌지게 만들기도 하고 있다. 바로 어제도 새벽 늦게까지 통증으로 인해 죽음에 관련된 사색의 바다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물론 통증의 늪을 약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빠져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통증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처방은 단순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순간적으로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때로는 그 길이 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일전의 시도에서 그 길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피할 수 없다면 결국엔 나 자신이 그 통증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각오는 항상 하지만 나는 너무나 나약하다. 하루에도 수십가지 생각과 상상을 하며, 망상에 빠진다. 물론 아직 아무런 증거가 없기에, 이것조차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종종 주변 상황과 현상들을 수치화하고 모델링하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곤 했다. 그리고 시물레이션으로 하나가 아닌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곤 했다. 그 덕에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항상 기우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실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확률을 이야기하며 세상은 확률로 가득차 있다는, 확률론적 세계관에 대해 아버지께 설파하곤 했다.
나이가 들어 양자역학의 선봉자가 되고 난 뒤에는 이러한 확률론적 세계관에서 더 진보된 양자요동 세계관에 빠져버렸다. 그로 인해 이 세상이,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왔다. 물론 과학 관점 뿐만이 아니라 철학적 관점, 종교적 관점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왔다. [어렸을 때 나는 성당의 신부와 교회의 목사를 꿈꾸기도 했다. 내게 여유가 있었다면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지금쯤은 목사가 되어 매주 설교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 최근에는 바뻐서 이런 생각들이 뜸해졌는데, 어제의 통증과 그로 인한 고찰로 인해 오랜만에 나의 존재성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게 생겼다.
오랜만에 찾아오고 잘 가지 않는 이 친구에게 고마워 해야 하는 건가. 이 불쾌한 느낌과 언제가 되야 거리낌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