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책 초반에 인상적인 내용이 하나 있다. 저자는 '지구 환경이 인간이 살기에 얼마나 적합하게 만들어졌는가' 류의 논리를 접할때마다 TV에서 봤던 창조론자가 떠오른다 했다.
"...그 사람은 바나나 껍질을 벗기면서, 이 과일은 우리가 손에 쥐었을 때 편리하게도 사람의 입을 향하도록 구부러져 있다고 설명했다. 또, 두께도 우리 입에 딱 들어맞는다. 그는 하느님이 바나나를 인간 친화적인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손에 쥔 바나나가 인간의 소비를 위해 개량된 품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게 분명했다..."
싸우디에 살면서 뒷마당에 바나나를 키워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지난 3-4년간 불편함을 무릅쓰고 진화에 관한 생각을 수정해오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 창조론자의 뻘소리를 향한 저자의 냉소적 반응에 동감할 수 없었을 거다. 사실 쇼셜미디어에서 페미니즘이나 동성애 관련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는 네임드들을 팔로우 해오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이 책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거다. 그리고 책의 주된 내용이 동물의 인식을 연구하려는 시도 자체가 있기까지 학계의 좌충우돌, 그 동물 인식에 관한 인간의 오만했던 몰이해 기타 등등인데, 무수한 개인적 흑역사의 누적과 그것이 흑역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괴로운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여전히 인간, 혹은 자기 중심적 생각에 갇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이 책을 읽고 있었을 거...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이 빌어먹을 D-line에 속박된 출퇴근 시간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좀처럼 책을 집어들지 않았겠지라는 생각에 다다름과 동시에 책한권을 만나 읽는 것 조차 503호가 말하던 온 우주가 도운듯한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주) 아마도 교회 다니시는 분들 중에는 지구가 몇미터만 태양에 가깝거나 멀었어도 인간이 절대로 살수 없었다며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설계 블라블라..그런거 들어보신 분 많을 텐데요. 책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심해의 열수 분출공은 거기서 분출되는 아주 뜨거운 황 화합물을 이용하는 세균이 살아가기에 최적의 환경이지만, 열수 분출공이 호열성 세균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