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trix 는 Matrix Reloaded 개봉에 앞서 공개된 Matrix 시리즈의 프리퀄 성격을 띄는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이다. 총 여덟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작품은 첫번째 에피소드의 (공개될 당시로서는) 엄청난 3-D 작화수준 때문에 화제가 많이 됐을 뿐 아니라 외전임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 사건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시리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여덟개 에피소드 모두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것은 코이케 다케시 작화의 [세계기록 World Record] 이다.
이 에피소드는, 매트릭스 안에 있으면서도 매트릭스를 느끼는, 즉 매트릭스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 아주 특출난 사람들이 있고, 그중 어떤 사람들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매트릭스를 자각하게 된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된다. 주인공은 단거리 육상선수 Dan Davis. 짧게 말하면, Dan은 경기 도중에 인간의 한계를 아주 잠깐이나마 뛰어넘게 되는데, 그순간 매트릭스의 초록색 글자들을 보게 - 매트릭스를 느끼게 - 됨과 동시에 몸이 망가지게 된다. Dan은 그 순간 매트릭스 내에 특이점을 출력했을 지도 모른다. 곧이어 줄곧 Dan을 모니터하던 요원들에 의해 병원에 갇히고 에피소드는 끝난다. 실패한 Neo라고나 할까.
허망할수 있는 결말임에도 특별히 이 에피소드를 애정하는 것은, 현실세계에서도 Dan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내 세계관은 인간과 인간이 속한 자연계가 신이 정한 일련의 법칙들을 따른다고 믿는다. 인간에게 허락된 영역은 그래서 소위 자연 법칙이 정한 경계 내로 제한된다. 인간이 그 경계 너머에 다다른다면 그것은 신을 목격하는, 그러니까 Dan이 매트릭스를 자각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될 거다. 그런데 아주 가끔, 운동 내지는 훈련을 하다 극한 상황에 도달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다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과 그야말로 환상적인 앙상블을 만들어내거나 몇일씩 풀지 못했던 미분방정식을 어느날 문득 떠오른 직감으로 풀어내거나 평소에는 도저히 들리지 않을 작은 새소리를 이른 새벽 잠결에 듣게 되거나 하는... 무척 이례적인, 반짝 하고 지나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때 나는, 담벼락 너머 옆집 마당을 보려고 있는 힘껏 뛰어 오르는 어린 아이처럼, 신을 영역을 힐끔 훔쳐본다. 그것 마저도 모세에게 등을 보여주듯 신이 허락한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