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왠만해선 피하라
한국인들이 외국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멀리해야 할 집단 하나가 거론됩니다. 현지인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니라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가장 피해야할 집단으로 한국인들은 한국인을 거론합니다.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동남아에서나 한국인들은 잘 되면 잘 된다고 질투하고 못 되면 못 된다고 무시하고, 사기꾼이 득실거리고, 경쟁심이 가득해 같은 한국인들끼리 경쟁하려 한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직접 본 사례로 요리 솜씨도 좋은 젊은 한국 청년이 한국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자본이 부족하다보니 영세하게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청년의 음식점이 인기를 끌자 두 달 뒤 쯤 한국 아저씨가 배달서비스와 깔끔한 인테리어를 앞세워 동일 상권으로 들어왔습니다. 결국 그 청년은 두 달만에 사업을 접고 말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이슈지만, 머나먼 이국땅에서 현지인도 아니고 같은 나라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의 경쟁심에 관한 통계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경쟁에서 누군가가 나보다 잘할 때 그 사람이 부럽다’라는 질문에서(5점 만점) 한국인의 지수는 3.7점으로 중국인(3.49점), 일본인(3.09점)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긍정 답변을 한 응답자가 전체의 71%나 됐다.
출처 : http://news.donga.com/3/all/20110429/36816482/1
물론 이 스팀잇에서도 한국인 특유의 경쟁심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 같이 스팀잇 관련 이슈의 핵심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모든 문제의 핵심은 지나친 경쟁심리가 아닐까 합니다. 가입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보팅 금액은 고정되어 있기때문에 계속적으로 파이가 줄어드는 상황속에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인 경쟁심리의 근원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이렇게 경쟁심리가 심한 것일까요?
크게 4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첫째 교육방식의 문제 : 질문하는 서양, 암기하는 동양
서양은 질문하는 방식의 교육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미국 최대 권력 및 재력 집단 중 하나로 불리는 유태인들은 어린시절부터 유대교 경전인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하는데 한가지 특이한 방법이 눈에 띕니다. 앞뒤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서로에게 질문을 하면서 각자의 의견을 묻습니다. 그리고 현실사회에 경전의 내용을 어떻게 적용시킬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미국에서는 수학교육에서 문제풀이보다 수학적 원리의 도출과정을 중시합니다. 왜 이러한 원리가 도출되었는지, 이러한 원리가 어디서 사용되는지를 중점적으로 교육시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IT기업들이 미국에서 탄생합니다. 경전을 읽으면서 사고를 확장시키고, 수학적 원리를 응용하도록 어려서부터 훈련시키는 교육 환경이 뒷받침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한국 교육은 질문이 아닌 암기형 교육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주어지면 미리 암기한 주어진 답안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데요, 이러한 교육방식은 절대적 답안이 존재하기 때문에 성적의 철저한 서열화가 가능합니다. 절대적 기준에 따라 100점부터 0점까지 순위를 나눌 수 있고, 2등이 존재해야지만 1등이 존재하게 되는 시스템입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 늘 절대적 잣대에 의한 평가받는 삶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고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적 사고가 보편화 되었습니다.
둘째 ‘사농공상’의 유교사상
지난 500년 간 조선왕조는 유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한반도를 통치했습니다. 잠시 유교에서 강조하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살펴 보겠습니다.
삼강
오륜
한국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한국인이라면 직접적으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아주 익숙한 개념이죠? 유교적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의 각자의 위치에서 조화로운 삶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사농공상’은 관리, 농부, 기술자, 상인 순으로 직업의 귀천을 나눈 개념인데 이 개념 역시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통용됩니다.
최근에는 공무원시험 인기에 힘입어 신 사농공상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21세기는 평등사회라고 하나 한국인들의 마음 속 한가운데는 여전히 사농공상이 뿌리깊게 박혀있습니다. 학창시절 저의 선생님들로부터 공부를 잘하면 좋은 공무원이 되거나 좋은 회사를 다닐 수 있다고 알려줄 뿐 훌륭한 기업가가 되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주변에서 장사로 갑자기 돈을 벌었다는 사람이 등장하면 ‘졸부’, ‘장사치’, ‘천민자본주의’등등 원색적 어휘로 상대방을 비난하기 바쁩니다. 나보다 아래로 보였던 사람이 갑자기 돈이 생겼다고 떵떵거리는 모습을 보니 인정할 수 없거든요. 나는 상대보다 잘난거 같은데 상대가 나보다 잘난거 보이기 시작하니 화가나고 질투가 나기 시작합니다.
셋째 집단주의
집단주의 역시 유교적 문화의 한 부분인데요,집단주의에서는 나라는 자신이 집단이라는 남으로부터 정의가 됩니다.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나는 XX다’ 의 XX에 들어갈 말은?
서양인에게 ‘나는 XX다’라는 질문을 하면 '나는 예쁘다. 나는 창의적이다.' 라는 식의 주체적인 답변을 하는 반면 한국인에게 질문을 할 경우 '나는 학생이다. 나는 엄마다.'라는 식으로 타인의 기준에 따른 식으로 자신을 정의합니다.
집단 주의 문화 속에서 한국인들은 나라는 존재가 남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주변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 안에서 인정을 받아야지만 나라는 존재가 정의가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서든 남들보다 앞서야 됩니다.
넷째 모든 문제의 근원 – 지형적 문제
중국인들은 삶이 힘들 경우 땅도 워낙 넓으니 다른 곳으로 이민을 떠나는 삶의 방식을 살고 있고, 전세계 곳곳에서 부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 한민족들은 3면이 바다에 둘러쌓이고 북으로는 오랑캐로 둘러쌓인 그야말로 배수진을 치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대한민국의 인구는 2018년 3월 현재 5,100만명 정도로 세계 인구밀도 23위(OECD 국가 중 1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땅은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인구만 계속 늘어나니 파이는 점점 작아져서 삶이 치열한 전쟁터로 바뀌게 됩니다.
경쟁심리의 양면성 그리고 수용
이렇게 한국인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에 내몰리다보니 세계적으로 큰 사고를 치게 됩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2018년 현재 GDP 세계 11위, 2017년 무역규모 1조 세계 6위 수출국가, 88년 서울 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등등 인류 역사상 전례없는 레코드를 달성했습니다.
삶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온 끝없는 발전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세우게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런 대한민국을 만든 경쟁심리는 우리의 문화 속에 축적되어 내려온 제일 중요한 삶의 가치이자 원동력이었고, 이러한 가치의 근원은 지형적인 영향이 작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산이 없어지고 바다가 열리는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인의 경쟁심리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스팀잇 내 각종 이슈는 계속 될 것입니다. 대신 한국인의 경쟁적인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평소에 받을 화도 덜 내게 되고, 오히려 상대의 경쟁심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는 삶의 태도가 더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