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은 글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그림 업로드하다가 글이 날아가버려서 다시 쓸까 말까 수천번 고민하다가 다시 쓰게 된 애증의 편입니다.
지난번 에곤쉴레에 이어 다룰 화가는 바로 스페인 화가 프랜시스 고야입니다.
서양 미술사에 굵직한 선을 그은 화가들 중에는 스페인 출신 화가들이 많은데요. 피카소, 벨라스케스, 달리, 미로와 더불어 고야는 미술의 중심지라 할 수 없는 스페인에서 서양 미술사에 굵직한 선을 그은 화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뭔가 좀 우울해보이지 않나요? 좀 우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우울함은 조금 뒤에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그의 작품 중에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이란 그림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프란시스 고야,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0-1801, Oil on Canvas, 280x336cm, 프라도 미술관>
고야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같이 스페인 왕궁의 궁정화가로 활동했던 화가였으며, 후기 로코코풍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미술사에서 고야를 중요한 화가로 보는 이유는 당대 상황과 사조의 영향을 뿌리삼아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고야의 이 작품을 보면 오버랩되며 떠오르는 그림이 있지 않나요?
<디에고 벨라스케스, Las menias(시녀들), 1656, Oil on Canvas, 318x276, 프라도 미술관>
바로 이 작품인데요. 이것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입니다. 아 어디서 한번쯤 봤다 싶으실..... 아닌가? 어쨌든 이 두 그림은 왕궁 내의 삶과 궁정인물들의 초상화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분명 두 화가의 화풍에서 큰 차이가 느껴지실 겁니다.
먼저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화려한 궁정의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입니다. 넓은 방 중앙의 마르가리타 공주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시녀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놨습니다. (미셀푸코가 이 그림에 부여한 인문사회학적 의미는 나중에 벨라스케스 편에서 따로 언급하겠습니다)
하지만 고야의 그림에서는 인물의 얼굴, 특히 눈동자에서 뭔가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왕을 중심에 배치했던 것과 달리 왕을 왕비의 오른쪽에 위치시킨 구도, 그리고 왕비와 왕의 얼굴(눈동자)에서 묻어나오는 우매함과 무능함. 이러한 것들을 감정적 균형을 잃지 않고 지배계층에 대한 적대감을 예술적으로 훌륭히 표현해낸 것입니다.
이 시대에 왕궁에 고용된 궁정화가가 권력층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갖고 그림을 그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불경죄(?)로 밝혀지면 바로 단두대 가즈아~!! 하던 시절이었을테니... 이런 묘한 긴장관계가 고야를 대가의 반열에 올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고야는 본인 인생의 말기에 매우 어두운 느낌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요. 아무래도 격변의 시 기였던 근대 유럽을 살아가면서 받게 된 외부충격과 청각상실에 따른 내부충격이 그의 감수성의 색채를 변화시킨 듯 합니다.
그가 살아가던 18세기 유럽은 프랑스혁명, 산업혁명, 7년 전쟁 등 현대로의 이행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청각을 잃고 치료를 받던 시기 프랑스 혁명의 이상에 이끌렸고, 철학책을 탐독하기 시작했으며, 마녀와 악마에 대한 미신에 사로잡힌 스페인의 풍조와 부패한 가톨릭 교회의 실상을 작품을 통해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카툰(만화)의 시초라고 평가받는 판화집 <카프리초스>입니다.
지금 발매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그림체 같습니다. 약간 이현세 작가님 느낌도 나고 ㅎㅎ 그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는 문구를 이 판화집의 부제로 붙이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철학의 황금기였던 18-19세기에 이성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너무 길어져서 두 편으로 나눠야겠네요. 다음에는 고야 말기에 대해 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