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야기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태국의 정치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심도깊에 모든 이야기는 하지 못하겠지만, 전체적인 그림으로 태국의 정치혼동기의 시작과,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그 정치적 유산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전 태국의 총리이자 현재 해외도피중인 탁신 치나왓 입니다.
탁신은 누구 ?
탁신이란 이름을 들어보신 분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했다고 알려진 이사람, 맨시티의 구단주였던 이사람, 경찰이자 성공한 사업가였던 이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해외도피중인 이사람에 대해 혹시 하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사진출처: 나무위키: 탁신 친나왓
탁신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탁신의 얼굴이 마윈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많으며, 실제로 탁신 또한 10년만에 태국 최고 재벌중에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치앙마이 출산이며, 중국 화교 집안의 사람으로 30대까지 경찰로 삽니다. 태국에서 경찰의 힘은 무진장 쎈데, 70~80년대의 안기부급의 경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탁신은 부인은 아주 정치적 힘이 있는 가문이었습니다. 탁신의 부인의 어머니는 라오스의 왕족 출신이며, 가문은 태국 황실 경찰을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가문이었습니다. 탁신은 이를 바탕으로 경찰에서도 승승장구를 합니다. 웃긴건 탁신은 경찰을 하는 와중에 여러가지 비즈니스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업을 말아먹고 부채가 500만 바트로 한화로 약 1.8억원 정도 되죠. 1980년당시 돈이니 엄청난 빚을 진 것이나 다름이 없죠.
그러다가 인맥을 통해 정부기관에 컴퓨터를 납품하는 회사를 차리고, 이걸로 돈을 크게 법니다. 그리고 이걸 계기로 경찰에서 사임을 하고 영화제작을 합니다. 탁신의 아버지가 영화관련일을 했기 때문에 자신도 관심이 있었나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업 분야를 넓혀갔고, 돈을 통해 고위급 정치인들과 엄청 친밀한 관계를 맺어갑니다. 1989년에 탁신은 케이블 방송사를 차리고, 당시 태국 문체부 장관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또 말아먹죠
그리고 탁신은 통신산업에 진출합니다. 현재까지도 태국에서 큰 대기업 중 하나인 AIS와 TOT의 전신 기업이죠. 그리고 이것은 나중에 모두 통합되어 탁신은 계열사를 거느린 회장이 됩니다.
동시에 정계까지 진출하면서 교육부장관, 외교부장관, 부총리, 총리등을 거치면서 정계급 거물로 성장을 해버립니다.
1997년 헌법개정 그리고 탁신이 총리가 되다
1997년 똠양꿍 위기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지자 태국은 민주화 국가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헌법이 1997에 크게 개정되면서 가장 민주화된 헌법이라는 별명을 얻죠. 1997년 민주헌법의 가장 큰 변화는 의회내각제인 태국의 상원의원을 기존 국왕이 임명하는 방식에서 시민들의 직접투표로 바꾼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탁신은 타이락 (Thai loves Thai) 정당을 만들면서 포퓰리즘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2001년 선거에서 민주당을 압도적인 의석차이 (248 VS 128)로 이기면서 총리가 됩니다. 타이락 정당은 반부패와 경제성장을 필두로 선거에서 압승하게 되며, 1천원 의료보험 정책 (30 Baht Universal Health Care), 마약퇴치 전쟁 (두테르테랑 비슷함), 태국 남부 무슬림 극진주의자들을 강력하게 제압, 지방 경제 개발 정책 등을 포함해 저소득층을 위한(?) 포퓰리즘을 펼치게 됩니다.
이때부터 세상이 변했고, 사람들은 점차 탁신을 지지하기 시작합니다. 태국의 빈부격차는 엄청났고, 탁신은 경제성장정책과 포퓰리즘을 병행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끌면서 서민들에 엄청난 지지를 받습니다. 탁신의 독주는 아무도 막을 수 없게 되었죠.
그사이에 그는 차곡차곡 부정부패를 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 탁신과 기존 재벌들 관료들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돈으로 언론을 통제, 시민단체 통제등을 하면서 자신의 이미지 정치를 병행하였습니다. 탁신은 개혁적인 성향이 강했고, 보수적이었으며, 기존 왕권을 부정하는 공화주의자였으며 엄청난 부정부패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경제인 25위에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축출당하다
2005년 탁신은 또 다시 엄청난 투표 격차로 재선에 성공합니다. 앞으로 수십년간 탁신은 계속 집권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였죠. 지방의 농민들이 탁신을 엄청나게 지지하면서 계속해서 정권을 이어나갈 것 같이 보였습니다. 당시 탁신은 태국 남부 분리운동주의 태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지난 11년간 6천명이 테러로 살해된 이곳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Feat. 태국의 이슬람 분리운동 (Deep South Conflict in Thailand)
를 격하게 공격하고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하면서 엄청난 무력저항을 받습니다. 그와 동시에 탁신은 태국 남부 분쟁지역에게 불리한 정책을 펴면서 왕실의 추밀원 (Privy Council)로 부터 경고를 받고, 위기감이 조성되게 됩니다. 왕실의 추밀원은 왕을 대변하는 곳으로 태국은 입헌군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상 왕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총리보다 위에 있었기 때문에 탁신은 긴장을 하게 되죠.
당시 태국의 군인은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러므로 탁신으 군 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측근을 주요 요직에 세우려 합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위치의 육군참모총장자리는 기존 장관급 군인들의 반대로 자신의 측근으로 인사를 할 수 없었고, 결국 참모총장은 강력한 친 왕권인 쏜티가 차지하게 됩니다. 또한 3사단장 자리까지 추밀원장이었던 쁘렘의 최측근으로 임명이 되면서 사실 상 탁신은 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그 와중에 계속해서 수완나품 공항 준공과정에서 탁신의 부정부패 사실이 발견되고, 탁신은 지속적인 언론 통제를 하려 합니다. 탁신의 비즈니스 친구인 그래미 그룹 (우리나라로 따지면 SM 또는 YG 엔터)의 파이분이 태국 최대 언론사인 방콕 포스트를 인수하려 했고, 방콕포스트의 한 기자가 수완나품공항 활주로에 균열에 대해 보도하면서 해고당하면서 언론인들이 격분하게 됩니다. 또한, 마티촌이라는 태국에서 유명한 일간지를 발행하는 인수하려하면서 이는 기존 언론인들에게 크게 위협으로 느끼게 되었고, 언론인들은 일심해서 탁신에게 반기를 들게 되죠.
더욱이, 쏜티라는 사람은 미디어계의 큰 손인데 금융위기 당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탁신이 집권하면서 경제상황이 극도로 나아지며, 많은 부채 탕감을 받으면서 친 탁신파로 탁신의 측근에서 탁신의 언론통제를 도와왔던 사람인데, 탁신의 지속적인 부정부패와 언론장악의 행위를 보고 한순간에 돌아서며 반탁신계로 돌아서게 됩니다. 미디어의 지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손티가 방송에서 탁신을 비난하기 시작하자, 탁신에 대한 반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됩니다. 이를 놓치지 않은 군부는 드디어 움직이게 됩니다.
2006년은 태국에서 아주 정치적으로 뜨거웠떤 기간인데, 2006년 10월 총선을 앞두고 9월에 군부가 구데타를 일으킵니다. 9월에 탁신이 UN 회의 참석차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구데타를 일으켜 버린 것이죠. 탁신은 오도가도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
그리고 그후
탁신은 태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당시 영국에는 탁신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맨시티의 지분 55%를 매입하면서 구단주로 등판했고, 엄청난 비난을 맞게 됩니다. 탁신이 부패한 정치인이었고, 또한 마약과의 전쟁에서 지금의 두테르테처럼 엄청난 학살을 자행했기 때문이죠.
이후 태국 법원에서 태국은 유죄판결을 받으며 범죄자 신분이 되고, 구단을 만수르에게 팝니다. 이때 당시에도 약 2배의 차익을 올렸다는 썰이 있으니, 타고난 장사꾼인지 타고난 사기꾼인지 참 분간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결론
오늘 태국의 레드VS옐로우 정치적 대립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분량이 많아져 탁신밖에 적지 못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2탄에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탁신같은 경우는 아직도 평가가 엇갈립니다. 실질적으로 태국의 금융위기 이후 금융위기를 잘 넘겼으며, 보수적이지만 진보적인 경제정책으로 태국의 빈곤률을 낮추고,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태국의 정국은 레드 VS 옐로우의 혼동으로 변하며, 저는 태국의 그 현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당시 학교가 휴교를 내렸고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으며 외신기자가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옐로우와 레드의 정치적 갈등으로 총리가 바뀌었고, 저 또한 우연치 않게 학생으로 이 시위에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상 태국 학자사이에서도 탁신 지지파와 반 탁신 지지파가 나뉘는 상황에서, 이 정치적인 상황은 아주 혼란스럽기만 한 것이 사실입니다.
▲ 2013년 반잉락정권에 대해 연설중인 전 아세안 사무총장 故 수린박사님
▲ 그리고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저
결국, 군부가 다시 구데타를 2014년에 일으켰으며, 운타 (Junta) 정부인 쁘라윳 정권이 지금 껏 통치를 하고 있는 실상입니다. 다음엔, 탁신 이후의 옐로우와 레드의 갈등, 그리고 탁신이 어떻게 뒤에서 그들을 조종했는지(?)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정치이야기를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한 자료: 위키피디아: 탁신 / 나무위키 : 탁신 / 개인블로그, 수업자료 등) 특히, 위에 언급한 개인블로그에 정리가 정말 잘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태국의 정국에 대해 시험보기 전에 봤던 블로근데 오랜만에 보게되니 반갑네요 :) 태국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위의 블로그의 글들을 읽으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