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몸이 부스러지던 시작점을 알진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인지 아니면
일에 치일 때부턴지
가늠이 안된다.
항상 몸뚱이는 서서히 조각나다가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게 어느 날 몸의 한쪽에 머물던 염증은
스멀스멀 온 몸을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장 떡볶이를 먹던 저녁,
아랫입술이 서너배 부어올랐다.
떡볶이 때문이 아니라고 부정해도
퉁퉁 불어 혈관을 쥐어짜는 고통을 피할 수 없었다.
헐레벌떡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도 소용없었다.
굵은 눈물 한 덩어리로 두어시간을 보낸 후에야
통증은 호수처럼 가라앉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면서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긴 여행을 와 염증과 씨름하며
한번은 손등에 염증이 부글거리는 꿈을 꿨다.
곧 벌레가 올라오듯 팔꿈치로,
목과 배 아래로 발진이 뒤덮었다.
징그러웠지만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꿈에서 깨자마자 어제 가렵던 손등을 문질렀다.
다행히 후두둑 딱지만 앉은 채 염증은
몸 속 깊숙히 들어가 있었다.
묘한 지점에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그가 힘겹게 계단을 오른 후에
바락바락 화를 냈을 때,
좋아하던 게임도 무르고 시체처럼 누워있을 때,
그가 왜 몸보다 마음부터 병들었는지
어렴풋 알 수 있었다.
무력함은 세포에서 시작되는 듯해도
끝내 그 자체로 또다른 합병증이 된다는 걸
왜 그땐 몰랐을까. 피차 건강치 못한 후에야,
아파서 쉬어야 하는 순간이 늘어서야
그의 복잡한 울분이 떠올랐다.
금방 나을 것이란 바람도 없고
다 짜증난다는 적의도 없다.
이런 몸으로 여행까지 와서는
가물어 갈라지는 피부와,
밤마다 여독을 뱉는 통각은 두렵지만
익숙하기도 하다.
이젠 조금 더 나를 위해 사리고,
그럼에도 좀 더 무모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조절해야 함을 안다.
내게 있는 여력이 많지 않음을 인정한 후에야
오히려 적은 동작으로, 간결한 삶으로
치환해가는 데 수월함을 느낀다.
이제 내게 가장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하나를 선택할 때 다른 걸 포기해야만 하는 처지기에
오히려 중한 것이 뭔지 직시한다.
단순해진 삶의 방식을 따라 시선은 명료해지고,
좌절은 짧아진다.
간혹 과거와 다르다는 것이 분에 넘치게 섭섭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장 귀중한 것을 위해 힘을 아낀다.
화내고 울고 지치고 다독이는 속싸움 끝에
웃는 낯을 보며 나도, 내 세상도
그럭저럭 별 일 없이 산다.
다 잃기 전에
더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살아보자는 감각으로
어렴풋, 끈질기게 지내고 있는 중이다.
- 20160718, 그리고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