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었던 때와 이를 극복한 경험을 쓰시오."
자소서마다 내 안부를 묻는 줄 알았다.
정작 그들은 내 고통이 말의 형식으로,
알맞게 극복된 신화이기를 원한 것이었지만.
나는 후회한다.
그 때 울었어야 했는데,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몸을 뒤집어 욕창을 닦아낼 때,
검은 한복 차림으로 상을 치를 때 난
충분히 괴로워야 했는데 차마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 제 고통을 뒤늦게 인정한 후에도,
통각이 그대로 비집고 나오진 못하게 애썼다.
'타인은 내 소리를 견딜 수 없으리라'
소리가 아닌 말의 형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서사와 적당한 규모를 셈했다.
타인에게 허용가능한 통감은 그정도로 충분했다.
그리고 자소서를 쓰는 지금,
나는 다시 인정받을 만한 아픔을 써낸다.
내 지난 날의 파편 중 가장 그럴듯한 걸로,
말로 형용할만 한 걸로 화면을 꾸민다.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나는 극심히 아팠고,
이제 이겨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그 모든 비명은,
살려달라던 병상의 외침과
요동치는 바이탈,
토악질과 진물은
정말 다 지난 일일까.
모두의 공감을 원하진 않지만,
지난 아픔을 자랑해야 하는 상황은 낯설다.
이해 못할 고통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걸까,
섭섭한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불합격하면 왠지
승인 받지 못한 기분이 들까,
없는 취급 당하긴 싫어서 여러 번
고쳐쓰는 버릇이 생겼다.
이미 어떻게 읊어야 할지 자주 겪어서 어렵진 않다.
먹고 살기 위해 지금도
짐승같은 속울음을 세련되게 가꾸며,
나는 괴물이 돼간다.
"가장 힘들었던 때와
이를 극복한 경험을
1000자 내로 쓰시오."
- 한창 취준하던 2016년 하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