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무 말이나 막 내뱉고 다녔다.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필터링 없이 그대로 흘려보냈다. 철이 들어 나아졌지만, 20대 초반까진 정말 겸양이나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푼수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진 경우가 많았다. 생각나는 일화 하나.
고등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이 그런 나를 재밌어 하셨다. 생활기록부에 ‘유모어’ 감각이 있다고 썼을 정도다. 물론 사실과는 다르지만. 학년말 쯤 개인 면담을 했는데, 나한테만 특별히 1시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수업도 빠지고 그분과 면담을 했다. 물 만난 고기처럼 마구 이야기를 풀어댔다. 그러다가 얘기가 깊어지고 심각한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뭐 그런 얘기가 나온 모양이다.
내 의견을 물었다. 신중히 답했다.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고 풀었다. “우릴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무슨 자격으로 우릴 가르칠까요? 선생님들이 과연 인생에 성공한 사람들일까요? 고만고만한 사람들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한테 교육을 받으면 우리도 고만고만해지는 것 아닐까요?” 미화해서 말했지만, 저런 요지의 말을 했다.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당시의 난 자뻑에 빠졌다. ‘역시 내가 생각할 화두를 던졌구나. 교육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어. 역시 난 빼어난 학생이야’
지금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진다. 쪽팔려 미칠 것만 같다. 당시 선생님의 심각한 표정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화를 참는 것이었다. 당시엔 체벌이 일상이었고, 특이한 사립학교였던 탓에 가혹행위도 많았다. 군대에서도 안해본 머리박기를 고등학교 때 많이도 했다. 화가 나면 꼭지가 돌아버리는 분이었는데, 당시 표정은 가까스로 폭발을 참는 인내에 가까웠을꺼다. 눈치 없고 어렸던 나는 대단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여겨 의기양양했다. 사실은 쳐맞을 뻔 했는데 말이다.
어쩌면 자부심으로 살아온 그분의 인생을 뭉개는 발언이었을지 모른다. ‘교사’란 존중받아 마땅한 직업이다. 난 그걸 한마디 말로 무시했다. 내겐 교사와 교육제도를 깔아뭉갤 자격이 없다. 혹시 난 무개념 언행으로 여럿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온 건 아닐까 반성해본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기보다 반대가 훨씬 쉽다. 생각 없이 뱉은 한마디는 천 냥 빚을 넘어 핵폭탄이 되기도 한다.
말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말이 그저 말일 뿐이라면, 국민이 개돼지라는 발언에 분노할 필요도 없고, 암호화폐는 붕괴할거라고 했던 호언에 열낼 이유도 없다. 예는 무수히 많다. 실언 한마디에 직장과 사회적 지위를 잃고 추락한 사람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혀는 칼이 되어 스스로의 목을 벨 수 있다. 입이 재앙의 문이 되어 화를 불러들일 수 있다.
내가 생각 없이 던진 돌에 죽어나간 사람이 있는 건 아닐지. 내 혀가 칼이 되어 마구 베어낸 사람이 있는건 아닌지, 혹시 내가 뱉은 말이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지는 않을지 생각해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인터넷 세상은 더 무섭다. 익명 뒤에 숨어서 돌을 던진다. 돌을 던진 사람의 위치는 노출되지도 않는다. 상처 받는 피해자에게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내가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악플러 중 자기가 악플러임을 자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 중엔 옳은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반성과 자각이 없으면 스스로도 모른 채 악플러가 된다. 악플러와 키보드 워리어는 이제 그 생활을 청산하고 스팀잇에 정착했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