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사람들을 만나는 건 썩 즐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생기는 오지랖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창회나 가족모임 같은 자리가 그리 즐겁지는 않다. 민족 제2의 명절인 구정이 다가온다. 이맘때면 난 똥줄이 탄다. 어르신들이 쏟아낼 질문공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무슨일 하니, 일에 비전은 있니, 결혼은 언제 할꺼니, 여자친구는 있니 등등.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이 정도면 괜찮지만, 연봉액수와 집평수 같은 구체적인 숫자를 묻기도 한다. 그걸로 저축이 되겠니, 안정적인 걸 찾아야지 않겠니, 하며 내 걱정을 해준다. 과도한 관심이다. 거기다가 ‘누구는 이렇다는데...’ 하며 존재 여부가 불투명한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기도 한다. 어르신뿐 아니라 또래 사촌들도 귀찮게 한다. 으스대며 떠벌리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딜 가나 꼭 한명은 있으니까.
잔소리와 오지랖이 나를 향한 애정일 수는 있다. 안부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직 백수와 코인투자자인 나로썬 현실 그대로를 말할 수 없다. 그럴듯한 거짓말과 핑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귀찮고 피곤하다. 속인다는 생각에 마음도 편치 않다. 그래서 명절이면 해외여행을 가거나 차라리 일을 하는 것이 편하다는 청년들이 많다는데, 이에 적극 공감한다.
하락장이 아니었거나 고점에서 현금화를 조금 했더라면 피신을 겸한 해외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아쉽다. 여하튼 오지라퍼들의 성화에 씁쓸한 마음이 된다. 그런데 나는 어떨까. 어쩌면 그들 중 한명이 아닐까. 오지라퍼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나또한 오지라퍼였다. 그것도 만렙 오지라퍼다. 친구나 친척의 근황과 더불어 직업과 연봉도 묻는다. 결혼생활과 배우자의 외모도 확인하려고 한다. 가끔 집평수도 캐본다. 그리고는 한두마디쯤 코멘트를 붙여 일침을 가한다. 나도 훌륭한 참견쟁이였던 것이다. 내게 쏠리는 관심엔 부담을 느끼면서 남에겐 무한대의 관심으로 씹고 까고 해왔다. 한국인의 특성일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가십과 루머를 좋아하는 게 사람들의 기본 생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의 수입과 생활수준은 물론 은밀한 사생활까지 뒤쫓고 추궁한다. 이 지점에서 오지랖이 폭력이 되는 것 아닐까. 탈탈 털어 발가벗긴 후 속옷색까지 확인하려든다면 병적인 관음증이다. 애정과 관심에 기초한 오지랖이라면 그나마 낫긴하겠지만, 그것도 적절한 선에서 끝내야 할 것이다. 구구절절 따지려고 든다면 호사가나 파파라치와 차이가 없다.
가족들이 도란도란 모여 화목한 한때를 보내야 할 명절에 궁색한 변명으로 작아지는 나에게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친척에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다 비슷하다. 잘나고 잘난 엄친아들은 우리 주변엔 있지도 않다. 도토리 키재기식 비교와 품평이 의미가 있을까. 비교와 오지랖은 이제 치워버렸음 한다.
우리 모두 오지랖으로부터 자유로운 설날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부터라도 오지랖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