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옛날 영화를 본다. 잊혀진 7-80년대 작품을 굳이 찾는다. 공부삼아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이유다. 솔직히 웃으려고 본다. 당시 흥행한 신파영화나 청춘영화들, 지금 보면 폭소를 유발한다.
영화사에 획을 그은 걸작의 경우엔 다르지만, 그저 흥행만 성공한 상업영화는 지금 보면 상당히 웃기다(유치해서!) 어떤 유쾌한 정취- 당시 결코 의도하지 않았을 -나 흥겨움은 있다. 그런 특유의 매력으로 옛 영화를 찾지만, 왜일까. 보고나면 씁쓸하고 텁텁한 뒷맛이 남는다.당시엔 분명 멋지고 감동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난 그저 비웃으려고 찾는다.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어르신들. 용서해주세요.
방금 1996년 작 한국영화 은행나무 침대를 봤다. 배우들이 쟁쟁하다. 한석규, 심혜진, 신현준 출연. 주제는 '전생'과 '천년을 흐르는 사랑'이다. 지금은 흔해빠진 소재지만, 당시로선 신선한 판타지였다고 한다. 고전이라 부르긴 어렵겠지만 개봉 후 꽤 시간이 흘렀다. 96년이면 그 해 출생자가 한국 나이로 23살이 돼버렸다. 대학 졸업반이거나 군 제대했을 나이다. 엄청난 세월이다. 당시 흥행 영화로 이름만 익히 알고 있다가 우연히 관람했다.
감상은 즐거웠다. 다만 작품성과는 별개의 부분이었다. 당시 신드롬 급으로 흥행한 영화이며 ‘황장군’ 열풍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와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현재와는 다른 사회 분위기가 느껴져 과거를 읽는 ‘사료’처럼만 다가왔다.
헛웃음 까지는 아니어도 꽤나 촌스러운 편집과 CG 기술이 웃음을 주었다. 이상하게도 더 오래 전, 5-60년대 작품이 오히려 덜 촌스럽게 느껴진다. 가장 극도의 촌스러움은 ‘어정쩡한 옛날’ 것들 이다. 지금 보면 00년대 초중반의 영상이 가장 크게 촌스럽고 90년대 는두 번째 정도다. 어정쩡한 과거일수록 제일 촌스럽고, 어중간해지다가, 어느 순간엔 ‘전혀 촌스럽지 않은 지점’이 있다. 이제 보면 70년대 작품이 가장 덜 촌스럽고 현대적이다.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부분이 분명 있다. 주요 주제는 아니니 넘어가겠다.
아무튼 영상매체라는 것은 이토록 수명이 짧다. 과거 감동과 전율을 주었을 영상도 지금 보면 그저 코미디다. 그것도 아주 저급한 코미디가 되어 쓴웃음을 준다. 슬픔은 이 지점에 있다.
시간 흐름과 기술 발전은 흘러간 모든 것을 애들 장난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회 변화 혹은 발전은 과거의 것들을 조롱거리로 만든다. 00년대 초반 애니콜 폰이나 16화음 벨, 컬러링, 30만 화소 카메라 따위는 지금 보면 1급 웃음유발 물질이 됐다.
우리는 어쩌면 훗날 조롱거리가 될 것들에 열중하며 지내는 중인지 모른다. 과거 좋아하던 이성에게 잘 보이려 애썼던 행동들, 지금 보면 코미디를 넘어 블랙 코미디다. 쎈 척 하기 위해 똥폼잡던 헛짓거리는 수백회의 이불킥을 유발 중이다. 우리의 행동들은 왜 이리 덧없을까. 어쩜 이렇게 유통기한이 짧을까.
가끔 과거의 PC통신 속도, 컴퓨터 사양들을 농담소재로 삼는다. 앞으로도 이어질 것들이다. 나중 세대들은 2018년의 느려터진 인터넷 속도, 블록체인 몰이해, 스팀잇 가입자(겨우) 100만 등을 거론하며 비웃을 것이다. 심지어 내 인생 영화들을 보며 비웃을지 모른다. 아버지, 겨우 이런 걸 보며 눈물 흘리셨습니까? 부끄럽지 않습니까? 끔찍하다. 은행나무 침대를 보며 비웃은 점, 사과해야겠다. 잘못했습니다.
근데요, 지금 보니까 진짜 구렸어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세월은 과거의 영광을 덧없게 만든다. 물론,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 살아남는 걸작도 있다. 90년대 작품들, 터미네이터 2. 펄프픽션, 히트나 세븐 등등은 언제 봐도 걸작일 것이다. 세월을 관통하는 걸작도 있지만 그저 쓰레기통에 처박혀져 잊혀질 작품들이 더 많다는 게 슬프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중 몇개가 쓰레기통에서 건져지는 운명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