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세시 반쯤 오케스트라 연습을 갔고, 혼자 소율(160일 된 아기)과 시간을 보냈다. 낮잠을 어떻게 재워야 할 지 몰라 소율을 아기띠에 안고 동네를 배회하다보니 잠들었다. 울고 좀처럼 잠들지 않는 아기를 겨우 재우고 이제 한숨 돌리고 있다.
이혼소송 대리를 할 때면, 남편들은 백발백중 '아이와 놀아준다'라는 표현을 하곤 했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조금 냉소적인 기분이 되곤 했다. 아이의 뒤치닥거리와 가사노동을 하는 것은 아내이고, 남편은 그저 아이와 '놀아주는'것 뿐이라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와 시간을 함께 할 때 느끼는 것은 '놀아주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힘들다는 것이다.
집안일은 쉽고 재미있는 일이다. 나를 빤히 바라보며 칭얼대는 아이를 외면하고 하는 집안일이 아니라면. 정말 힘든 것은 가사노동도 뒤치닥거리도 아니다. 심지어 아이를 재우는 일조차도 아니다. 가장 힘든 일은, 그저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다.
소율이 우는 것보다, 소율과 둘만 되는 시간이 힘들었다. 그나마 동화책이 몇 권 있어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줄 때는 살만했지만, 그게 아니면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눈동자가 나를 빤히 쳐다볼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무언가 기대하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앞에서, 나는 채 20분을 소율에 집중하기 힘들어 휴대폰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그리고 휴대폰에서 눈을 떼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소율의 까만 눈동자와 마주치게 된다. 함부로 할 수 없지만 안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순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눈동자, 눈을 돌리면 죄책감이 엄습하고 눈을 마주치면 막막함이 다가온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왠지 나는 무척 외로웠다. 그렇게 나는 소율과 다시 20분을 함께 하고, 또다시 휴대폰으로, 책으로, 심지어 다른 풍경으로 눈을 돌리곤 했다.
아내는 이런 20분을 하루에 적어도 십수번씩 겪어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는 20분이 아닌 40분일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의 어색함과 눈을 돌리는 순간의 죄책감, 알 수 없는 외로움과 막막함 같은 감정은 아내에게도 동일할 것이다. 아내가 견뎌내는 시간과 감정의 무게를 다시 한 번 느꼈다. 밥을 벌어 소율의 눈을 피하는 스스로에 대해 죄책감이 생겼다. 밥을 제대로나 벌어오면 몰라.
소율을 재우고 글을 쓰기 시작한지 20분이 되었다. 방금 전까지 피하고만 싶던 소율의 눈동자가 어른거려 소율의 사진을 꺼내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런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거듭하게 하는 일, 그리고 나도 모르던 내 안의 나를 바라보게 하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