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기태입니다.
오늘은 연고전 or 고연전의 표현에 대하여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전형적인 법률 답안지 식으로 적은 글인데, 반쯤은 장난어린 글이니 재미있게 보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1. 연고전은 일본어식 표현이다?
연고전과 명칭에 대한 논쟁 중 다음과 같은 설이 존재함을 고대 출신의 연대생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설립년도를 기준으로 보성전문(1905)이 연희전문(1907)보다 2년 앞서 설립되었고(광혜원 제외), 한글 자음 순서에서 "ㅂ"이 "ㅇ"보다 앞서 당시 학생들은 자연스레 보연전이라 불렀었는데,일제 강점기에 들어, "아"단이 "하"단보다 앞서는 세계 유일의 언어인 일본어의 순서에 따라, "옌보덴"으로 불리우던 것이 광복 이후에도 이어져 "연고전"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2. 위 주장에 대한 반박
가. 일본어도 자음 순서로 조어를 만들지 않는다
우선 일본어라 해도 자음의 순서대로 부르지 않는다. 연고전과 비슷한 와세다-게이오 간의 경기는 '소케이센'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본어 자음 순서를 따르면 '케이소센'이 되어야 한다. 결국 일본의 경우에도 조어의 사용은 자음순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예가 된다.
나. 연고전은 일러도 1925년에야 시작되었다
기록상 연희전문(이하 '연전'이라 한다)과 보성전문(이하 '보성전문)의 첫 경기는 1925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는 다음과 같다.
경성 전문학교의 두 영웅인 연희전문학교 대 보성전문학교의 대전이 시작되야 서로 선전한 결과 보성전문에는 우퇴조優退組까지 남을 만치 보전이 쾌승하였으나 특히 연희전문의 대장조大將組 휘위 한맹석韓孟錫군은 과연 입신의 기入神之技가 있었으나 전위의 실책으로 천추의 한을 먹게 되었다.(동아일보, 1925년 5월 31일)
동아일보 작성의 기사임에도 연전을 보전보다 먼저 기재한 것이 눈에 띄고, 최소한 당시에 '보연전'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두 학교 사이의 정기전은 193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결국 연고전이 처음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가 심화된 1925년 이후의 일이므로, '일제강점기 전에는 자연스럽게 보연전이라 불렀다'는 말은 성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 일반적 명칭 여부에 대한 후세의 평가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는 농구 경기를 통하여 항일운동을 하였던 일제시대에 대하여 기재하면서 아래 사진과 같이 '극일의 횃불 - 연보전'이라는 이름의 책을 발행하였는데, 이는 일제시대에 '보연전'이 아닌 '연보전'이라는 이름이 더 일반적이었음을 알려준다(반면 '보연전'을 이름으로 한 책은 전혀 없다).
라.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한 정량적 분석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하여 '연보전'과 '보연전'의 호칭을 검색하여 보면, '보연전'이라는 표현은 일제시대 동아일보에서 2~3건 정도 기사로 나온 것 이외에는 아예 쓰이지 않는 말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마. 소결론
결국, 위 주장은 일본에 대한 반감 등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주장임을 확인할 수 있고, 굳이 '고연전'이라는 표현의 근거를 마련하려 만들어낸 조작된 서사로 보인다.
2. 연고전과 고연전 중 무엇이 일반적인 표현이었나?
앞에서 '고연전'이라는 표현이 '맞다'는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어떠한 이야기까지 나오는지와, '고연전'이 맞다는 근거가 사실이 아님을 밝혀 내었다. 그렇다면 고연전과 연고전 중 어떤 명칭이 좀 더 과거부터 쓰인 일반적인 표현이었을까. 이에 대하여 역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검색하여 과거의 표현을 살펴 보았다.
보전이 고려대학교로 이름을 바꾼 것이 1946년임에도 '고연전'이라는 단어가 처음 검색되는 것은 1963년의 기사이다. 그나마 해당 기사의 내용은 '연고전인지 고연전인지'에 대한 다툼이다. 단독으로 자연스럽게 '고연전'이라고 기재된 첫 번째 기사는 1964년에서야 발견된다. 그나마도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사는 동아일보에서만 나왔는데,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의 관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연고전'의 경우에는 1959년부터 그 명칭의 사용이 발견되고, 1960년대 기사의 경우에도 자연스럽게 '연고전'의 명칭을 사용함이 발견되니, 최소한 과거 기준에서 양교 학생 및 동문을 제외한 제3자들에게는 '연고전'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없어졌던 연고전이 1963년부터 재개되었고, 당시 기사들은 모두 '연고전'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만 해도 '연고전' 혹은 '연보전'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과거 기사를 검색하면서 재미있는 점은, 연고전과 고연전 명칭의 싸움이 1960년대 기사에도 자주 나타날 정도로 드러났다는 점과, 우리가 연세와 고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이미 1920년대에도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기사가 있다.
양교 실력이 거의 백중해진 1931년에 온 시민의 관심 속에 거행된 축구경기에서 급기야는 큰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선수 간에 폭력사태가 벌어지자 보성전문 응원단이 운동장에 뛰어 들어가 싸움을 말리려던 연희전문 선배 동문들까지 무수히 폭행하자 그 기세에 눌린 연희전문 응원단은 그저 스탠드에 앉은 체 한 사람도 꼼짝하지 못하고 맞는 것을 보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경기에 이기면 매를 맞아야 하고 맞지 않으려면 경기에 져야만 하는 것이 어느덧 연희전문의 전통처럼 되고 말았다. 이 사건도 연희전문의 승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 이성구 「연고전 회고사」, 연세춘추 제702호, 1974년 9월 23일5.
그리고 조금 찐했던 것은, 1966년 기사에서 이미 '연고전'은 영국의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의 카터 레이스, 일본의 소케이센에 비견되었고, 온 국민의 관심사이자 국민의 사기를 높이는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3. 결론
명칭에 대한 다툼은 50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지만, 한때는 '극일의 횃불'이자 '국민의 자랑'이었던 연고전이 과연 지금도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언젠가부터는 그저 학벌사회의 어중간한 승자들의 자랑행위 정도가 되어 가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인식이 되고 있지 않는지, 상업화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해진 프로스포츠만큼이나 학원 스포츠 또한 돈과 승패만이 존재하는 경기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마음이다.
명칭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실질과 내용일 터이니, 반농반진의 명칭 다툼만큼이나, 누가 더 사회를 위하여 기여하는지를 다투는, 그래서 다시 '온 국민의 사기를 높이는' 연고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